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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허 찌른 유머·통찰로 ‘새롭게 보기’
  • 작성일2023/08/01 13:50
  • 조회 69

‘작가들의 작가’ 김범, 리움미술관서 회화·조각·설치·영상 70여점 전시

나무 위 돌 “너는 새” 87분 교육받고
영양이 치타 추격하는 ‘동물의 왕국’
의미심장 이미지… 성찰의 장 열어

90년대부터 미술계에 중요한 영향
13년 만의 국내 개인전 ‘최대 규모’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김범 작가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에서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2010)은 새라고 교육받는 돌의 영상을 보여 주며 본질과 어긋난 의미와 정체성이 강요되는 현실을 짚는다.  리움미술관 제공

▲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김범 작가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에서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2010)은 새라고 교육받는 돌의 영상을 보여 주며 본질과 어긋난 의미와 정체성이 강요되는 현실을 짚는다.
리움미술관 제공


나무 위에 오른 돌 하나. 돌은 87분간 끈질기게 “너는 새”라고 교육받는다. 영상 속 강사는 돌에게 나는 법을 알려 주는가 하면 실습까지 시키는 촌극을 벌인다.

유리상자 속 모형 배에게도 강연이 한창이다. 영상에서 강사는 “지구는 육지로만 이뤄져 있고 바다는 없다”고 91분간 배를 ‘세뇌’시킨다.

과도하게 진지하고 정성스런 강의를 듣다 보면 헛웃음이 터지지만 불현듯 ‘나’를 포개 보게 된다. 가짜 지식을 주입당하고 자신의 본질을 구현할 수 없는 사회, 진실과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이 ‘부조리극’과 다를 게 뭔가.

사물인 망치를 잉태라는 생명력과 연결한 ‘임신한 망치’(1995).  리움미술관 제공

▲ 사물인 망치를 잉태라는 생명력과 연결한 ‘임신한 망치’(1995).
리움미술관 제공


김범(60) 작가는 이렇듯 특유의 허를 찌르는 유머와 통찰, 가장 간명한 표현 등으로 보이는 것과 그 이면의 진실 사이의 틈을 벌려 놓는다. 관람객들은 그 틈으로 들어가 유영하며 ‘새롭게 보기’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게 된다. 우리가 믿고 있던 상식과 관습이 뒤집히는 순간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로 25만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은 리움미술관이 그의 30년 작업을 펼친 이유다.

김범은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작가들의 작가’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예술의 역할을 실험하고 탐구해 온 한국 개념미술의 대표 작가다. 미술관 측은 공개 석상을 꺼리고 전시에도 극도로 신중한 그를 설득해 작가의 최대 규모 전시이자 13년 만의 국내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을 마련했다. 때문에 “이번에 보지 않으면 또 언제 볼지 모를 전시”라는 평이 나온다.

개가 벽을 뚫고 나간 그림을 입체적으로 연출한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  리움미술관 제공

▲ 개가 벽을 뚫고 나간 그림을 입체적으로 연출한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
리움미술관 제공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농담처럼 툭 던진 작가의 의미심장한 이미지는 자기 성찰의 장을 열어 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며 “1990년대부터 미술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 차세대 작가들의 관심이 크지만 실제 작품을 본 사람은 드물어 작품세계를 알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작업 하나에 2~3년이 걸리는 ‘과작 작가’인 터라 신작을 만나기 쉽지 않다. 전시도 그가 1990년대 초반부터 2016년까지 만든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70여점으로 꾸렸다.


지하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가로 10m 규모의 대형 영상 작품부터 관람객에게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란 화두를 내리꽂는다. ‘볼거리’(2010)라는 1분 7초짜리 영상은 익숙한 ‘동물의 왕국’ 속 영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기이하다. 치타가 영양을 쫓는 게 아니라 영양이 치타를 맹렬히 추격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약육강식의 질서에 무감해진 우리에게 이를 뒤바꿨을 때 어떤 세상이 가능할지 질문을 던진다.

추상화를 그리는 예술가의 고뇌와 애환을 비튼 ‘노란 비명 그리기’(2012). 리움미술관 제공

▲ 추상화를 그리는 예술가의 고뇌와 애환을 비튼 ‘노란 비명 그리기’(2012).
리움미술관 제공


비명과 웃음이 함께 터져 나오는 공간도 압권이다. 한 예술가(섭외된 배우)가 비명을 지르며 비명의 종류마다 다른 색감의 노란색, 획의 움직임으로 추상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노란 비명 그리기’(2012)다. 작품마다 이상적인 의미, 관념을 짜내야 하는 예술가들의 애환을 풍자하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작품이다. 세로 5m, 가로 3.5m 크기의 대형 회화 ‘무제 친숙한 고통 #13’은 미로 퍼즐을 대형 회화로 구현해 인생의 난관을 압축하는 동시에 이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간담회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작가는 오는 9월 7일 ‘토크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와 전시를 기획한 김 부관장, 주은지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작품 이야기를 나눈다. 12월 3일까지.

정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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