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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사라지는 순간의 아름다움/미술평론가
  • 작성일2023/03/22 14:42
  • 조회 169
클로드 모네, ‘수련’, 1910년대 (150×197㎝,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프랑스 파리)

▲ 클로드 모네, ‘수련’, 1910년대
(150×197㎝,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프랑스 파리)


모네는 1883년 지베르니로 이사해 192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여든여섯 해의 생애 가운데 마흔세 해, 딱 반평생을 지베르니에서 보냈다. 파리 북서쪽으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베르니는 모네 덕택에 명소가 됐지만, 당시에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센강 지류인 엡트강 가에는 포플러와 수양버들이 늘어서 있고, 강 건너편 언덕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었다. 모네는 보자마자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무리해서 집을 산 후 모네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고 값도 점차 오르면서 모네는 경제적 곤란에서 벗어났다.

모네는 정원 가꾸기가 취미였다. 가난할 때도 살 곳을 구하면 마당에 화초부터 심었다. 지베르니에는 원래 손바닥만 한 마당이 딸려 있었는데 모네는 주변 땅을 사들여 정원을 넓히고 연못을 만들었다. 정원을 꾸미는 데 열중하던 모네는 어느 날 붓을 들어 연못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 야외로 사생을 나가는 게 힘들어진 화가에게 연못은 좋은 소재가 됐다.

▲ 이미혜 미술평론가


모네는 붓 하나로 명성과 부를 쌓아 올렸다. 수련이 활짝 핀 지베르니의 정원은 성공의 증거였다. 그러나 우울한 말년이 앞에 놓여 있었다. 1911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1914년에는 맏아들 장이 지병을 앓다가 사망했다. 게다가 일흔이 넘은 모네는 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평생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직사광선 아래 눈을 혹사했기 때문이었다. 바깥세상도 어두웠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젊은이들이 무수히 죽고 있었다. 그럴수록 모네에게 남은 것은 그림뿐이었다. 그는 슬픔과 고통을 참으면서 ‘수련’에 매달렸다.

시간이 갈수록 모네는 연못 주변의 세세한 묘사를 생략하고 수련이 핀 수면, 수면에 비친 하늘이 만들어 내는 뉘앙스에 집중했다. 시력을 잃은 대신 마음의 눈을 뜬 것처럼 화면은 밝고 신선하게 빛난다. 250여점 가운데 가장 대작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여덟 점의 ‘수련’ 연작이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도 수련이 있다. 1966년 모네의 차남 미셸은 수련을 포함해 모네의 작품 150여점을 국가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오랑주리의 수련보다 크기는 작지만, 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작품이 망라돼 있어 변모 과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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