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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야 사진이야?…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와 사랑에 빠진 남자
  • 작성일2023/03/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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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기 작가의 한라산붉은겨우살이 작품. 정상기 작가 제공
▲ 정상기 작가의 한라산붉은겨우살이 작품. 정상기 작가 제공

“10여년 전 영실에서 윗새오름을 오르다가 나무 꼭대기에 새집 같은 것을 우연히 카메라 앵글에 담았는데 알고보니 겨우살이였어요. 그동안 찾아 헤매던 그 무언가가 가슴 안에 훅 들어오는 느낌이었죠. 마치 그건 사람의 생과 사, 인생 굴곡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죠. 겨우살이와의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됐어요.”

오는 4월 28일까지 그랜드하얏트 제주드림타워 갤러리 1층에서 ‘시련을 넘어 희망으로’란 주제로 특별초대전을 열고 있는 정상기(55) 사진작가가 지난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수묵화인 듯, 사진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를 11년째 찍고 있다. 작품을 알아보는 이들이 늘면서 실제 수묵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오히려 그의 작품을 더 선호한다.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오로지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에 분포되어 자생하고 있는 겨우살이 열매는 보통 노란색, 초록색, 흰색 열매이지만 붉은 겨우살이는 한라산에만 있다. 그것도 한라산 1100고지에서 1400고지 깊은 산 속에서 자신을 숨기고 있다.
지난 2일 그랜드하얏트제주드림타워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정상기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 지난 2일 그랜드하얏트제주드림타워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정상기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그는 “흐린 날 겨우살이 열매를 카메라로 찍으면 햇빛을 받아 화이트홀이 생겨요. 파란하늘이 배경인데 하늘이 푸르면 열매가 검정색으로 나오죠. 하늘이 흐려야 화이트홀이 안 생겨 뷹은 열매도 그대로 찍힌다”며 “추운 1~2월에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 하얀 설국을 헤매는 일은 고행이자 수행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때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 주변을 보면 멧돼지 녀석도 내 셔터소리에 놀라고 도망치고 나역시 도망치기 바쁠 때가 있다”면서 “그래서 어느 대장간에서 구한 멧돼지를 위협하는 도구를 늘 갖고 다닌다”고 덧붙였다.


화창한 날에는 만날 수 없고 겨울날 벌거벗은 나무에서 비로소 최고의 순간과 맞닥뜨릴 수 있는 붉은 겨우살이. 그의 작품은 그래서 바탕이 하얗거나 회색톤이다. 때론 먹으로 힘차게 그려낸 듯한 그의 작품 속 흑백의 참나무는 조선시대의 진경산수화나 중국 남송시대의 수묵화와 조우하는 듯 하다. 흑백의 단순미, 화려함의 상위에는 단순함이 있듯, 산전수전 다 겪은 노화백의 작품처럼 여백으로 가득차 있다.

참나무 살 속에 뿌리가 들어가 영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겨우살이는 유럽의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로마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시시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 황금가지는 겨우살이의 가지며,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눈물은 겨우살이의 열매로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열매 앞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사진을 찍으면 사랑이 맺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에 나오는 그 마법 지팡이도 겨우살이란다.
한라산붉은겨우살이의 모습. 정상기 작가 제공
▲ 한라산붉은겨우살이의 모습. 정상기 작가 제공
 
그래서일까. 겨우살이를 찍는 일이 업(?)이 되다보니 겨우살이를 만나기 위해 문화재청, 세계자연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소, 제주도청 등의 허가를 받는 절차를 밟고 힘들게 한라산을 찾는다. 제주도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한라산 공식 탐방로가 아닌 곳을 다닐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겨울 흐린 날 사진을 찍기 위해 해마다 6~7개월 전부터 제주도에 허가신청 절차를 밟는다. 그래서 비탐방로를 딱 7차례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행복한 작가이기도 하다.

정 작가는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는 제주도 원주민들의 삶을 닮아있다”면서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삶을 일구며 살아가는 그들처럼 붉은 열매를 맺는 모습이 찬란하진 않지만, 진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건물 벽에 달라붙어 있는 잎을 다 떨어뜨린 담쟁이 모습. 정상기 작가 제공
▲ 건물 벽에 달라붙어 있는 잎을 다 떨어뜨린 담쟁이 모습. 정상기 작가 제공

정 작가는 최근 또 다른 친구를 카메라 앵글에 담고 있다. 담쟁이다. 겨울날 건물 벽을, 돌담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 녀석. 잎이 하나도 없는 담쟁이 줄기를 포착하고 있다. 살짝 보여주는 작품에는 마치 머리가 희어버린 할머니의 머릿곁을 보는 듯 하다. 다음 전시회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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