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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아지 새끼냐?”… 마초사회에 불 지른 이불의 첫 10년
  • 작성일2021/03/18 09:45
  • 조회 463

서울시립미술관서 ‘이불-시작’ 회고전

1990년 ‘제2회 한일 행위예술제’의 일환으로 서울과 도쿄에서 12일간 벌인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에서 이불 작가가 소프트 조각을 입고 도쿄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 1990년 ‘제2회 한일 행위예술제’의 일환으로 서울과 도쿄에서 12일간 벌인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에서 이불 작가가 소프트 조각을 입고 도쿄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스스로 매달린 ‘낙태’ 퍼포먼스 등 저항 메시지

1989년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발가벗은 여성이 등산용 밧줄에 묶여 객석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자발적 고난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이어지자 관객들이 달려들어 여성을 끌어내렸다. 스물다섯의 젊은 작가 이불이 말 그대로 온몸을 던져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한 ‘낙태’ 퍼포먼스다. 9분 51초의 기록 영상으로 남은 이 파격적인 행위 예술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봐도 묵직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세계적인 작가 이불의 초기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이 마련됐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불-시작’은 여성과 여성의 신체에 대한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남성 위주의 시선을 일관되게 비판해 온 작가의 모태가 됐던 1987년부터 10여년간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첫 전시다. 작가의 시그니처가 된 소프트 조각 3점과 퍼포먼스 기록 영상 12점, 사진 기록 60여점, 미공개 드로잉 50여점 등이 공개됐다.
소프트 조각 ‘무제(갈망)연작과 ‘몬스터: 핑크’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 소프트 조각 ‘무제(갈망)연작과 ‘몬스터: 핑크’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987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작가는 기존의 조각에서 사용하는 단단한 재료와 고정적인 표현에 답답함을 느끼고 천과 솜, 실, 철사 같은 부드러운 재료로 만든 소프트 조각을 실험했다. 사람의 손을 닮은 촉수가 주렁주렁 달린 기이한 형상의 소프트 조각을 입고 도시를 누비며 스스로 ‘살아 있는 조각’이 됐다. 1990년 서울과 도쿄에서 12일간 벌인 즉흥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는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 항상 회자되는 대표작이다.

●방독면 쓰고 부채춤… 날생선 부패 과정 전시도

이번 전시에는 1988년 첫 개인전에서 발표한 소프트 조각 ‘무제(갈망)’ 연작 2점과 1998년 선보인 ‘몬스터: 핑크’를 2011년에 다시 제작한 작품 3점이 진열됐다. 1988년 ‘갈망’부터 1996년 ‘I Need You(모뉴먼트)’까지 12개 퍼포먼스 영상 기록도 만날 수 있다. 소복을 입고 물고기의 속을 가르거나(‘물고기의 노래’, 1990) 방독면을 쓰고 한복을 입은 채 부채춤을 추는(‘웃음’, 1994) 등 도발적인 퍼포먼스들에선 어떤 경계에 대한 의식 없이 권력과 위계를 조롱하고, 공고한 사회 체계와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려는 작가의 폭발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장엄한 광채’(부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장엄한 광채’(부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전시에 초대된 이불은 냉장 유리 케이스에 금속 조각과 스팽글로 화려하게 장식한 날생선 63마리를 담은 작품 ‘장엄한 광채’를 설치했다. 썩어 가는 과정과 냄새까지 전시의 일부로 끌어들여 시각 위주 미술 개념과 기존 미술관의 권위에 도전한 시도였다. 하지만 진동하는 악취에 미술관은 개막 전날 작품을 철거했고, 이를 알게 된 저명한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리옹 비엔날레에 작품을 소개하면서 유럽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불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와 한국관 대표로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국제무대에서 각광받으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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