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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설의 추상회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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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랑은 2021년 신년기획전으로 <한국 전설의 추상회화> 전을 2.24(수)부터 3.6(토)까지 개최합니다. 초대작가는 김환기, 윤형근 작고 작가와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최명영, 서승원, 이강소, 김태호(출생년도 순) 모두 9명입니다. 출품작은 80호에서 100호 크기로 작가당 2점씩 총 18점이 출품될 예정입니다. 출품작품은 초대작가 작품 중에서도 엄선된 작품이 될 것이며, 전설의 작가들 작품이 전시장 벽에 나란히 걸리는 최고의 감상 기회를 미술애호가에게 제공하는 전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작고하신 두 분을 비롯해 기획전에 출품한 일곱 분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온 이들은 이제 전설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작가들입니다. 이들 9명은 비록 차이는 있겠지만, 50년대 이후부터 수많은 한국의 정치와 사회경제 그리고 문화에 대한 사건을 직간접 경험했던 이들이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일을 온몸으로 경험한 분들입니다. 무엇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미술이라는 예술 부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발전시키고 지켜온 예술가들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세세한 평가는 앞으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연구될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있어 현대미술의 기초가 세워지고 확장, 발전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들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서 전시를 여는 이유는 미술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역할 그리고 목적이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는 기본적인 효용 가치가 없다면 그 존재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스스로가 이것을 의도했든, 안했든 관계없이 미술애호가는 이들 작품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전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위로가 지금 또 필요하기에 이번 기획전을 열게 된 것입니다.

 
김환기 1913~1974
1936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 졸업
195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 교수
1954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63 상파울로비엔날레 회화 부문 명예상 수상
1970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한국일보 주최
1973 개인전 포인텍스 화랑, 뉴욕
1975 김환기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1984 김환기 10주기전, 국립현대미술관
1987 김환기 뉴욕 10년전, 프랑스 국립조형센터
1994 20주기 회고전, 환기미술관
2019 Whanki in New York: 김환기 일기를 통해 본 삶과 예술, 환기미술관
 
신안의 작은 섬 가좌도에서 태어나, 일본대학(동경) 미술학부를 졸업하였다. 대학에 재학하면서 미술연구소를 만들어 이과전, 백만회, 자유미술협회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추상미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광복 이후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모더니즘 미술운동을 전개하였다. 56년 프랑스 파리로 가서 3년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잠시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지만, 65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화실을 만들고 작품창작에만 몰두하였다.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50년대 그의 작품은 우리 정서가 깃들어 있는 물건을 소재로 하여 제작했다. 백자, 항아리, 달, 매화 등은 한국 역사가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슬픔 그리고 행복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한 소재주의에 머물지 않고 절제된 조형성에 의한 엄격한 화면구성을 통해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된 표현양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 뉴욕 시절은 한국적인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사라지고 대신에 사각형을 연속적으로 그려 그 속에 점을 찍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현하였다. 모더니즘 형식미를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으로 풀어낸 그의 작품은 예술가의 인생을 건 조형적 실험과 끊임없는 탐구로 빚은 한국인의 정서가 드러나 있다고 평가받는다.
 
 
 
윤형근 1928~2007
195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69 제10회 상파울로비엔날레, 상파울로
1977 한국현대미술의 단면, 동경센트럴미술관, 동경
1978 제2회 파리국제현대미술제, 국립그랑팔레미술관, 파리
1983 한국현대미술 70년대 후반 - 하나의 양상, 동경도미술관, 일본 순회전
1992 자연과 함께 - 한국현대미술 속에 내재된 전통정신, 테이트갤러리, 리버플
1994 The Chinati Foundation Marfa, 텍사스, 미국
1995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 베니스
2018 윤형근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2019 윤형근전, 베니스 포르투니미술관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난 윤형근은 57년에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이보다 10년 전인 47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국립대학교설립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하였고, 다시 홍익대에 입학하여 졸업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보도연맹에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는 등 커다란 역경을 경험한 이후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짙은 먹 향기가 느껴지는 깊은 화면과 정제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런 작품세계는 한국 전통미술에 뿌리를 두고 자신의 독창성을 추구한 결과이다. 자신의 그림이 추사 김정희의 서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밝힌 작가 생전의 소회가 이를 뒷받침한다. 캔버스에 먹빛의 은근한 농담으로 넓게 자리한 영역과 담백한 붓 자국에 흐르는 소박한 맛은 이른바 고전적인 의미에서 서·화(書畫)일치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화려한 색과 형상을 멀리하고 사색과 명상을 통해 자유롭고 차가운 이성의 차원을 열어놓는 문인화의 기품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박서보 1931~
1954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회화과 졸업
1963 제3회 파리비엔날레, 파리
1968 한국현대회화, 동경국립근대미술관, 동경
1975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 동경화랑, 동경
1984 60년대의 한국현대미술 - 앵포르멜과 그 주변, 워커힐미술관
1991 회고전 - 박서보 회화 40년, 국립현대미술관
1996 한국현대작가 : 정창섭, 김창열, 박서보, 동경화랑
2000 한국과 서구의 전후추상미술 : 격정과 표현, 삼성미술관 리움
2003 개인전, 미술 ACE갤러리
2010 박서보, 한국아방가르드의 선구자 : 화업 60년, 부산시립미술관
2019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국립현대미술관
 
1931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한 그는 한국현대미술을 개척하고 이끌어온 아방가르드의 대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여전히 아카데미즘에 빠져있던 기성화단에 저항하면서, 내면의 의식행위를 캔버스 화면에 기록하는 작법으로 화단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60년대에 현대전, 현대미술가협회, 60년미술가협회, 악뛰엘Actuel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였고, 21세기가 20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작품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흔히 앵포르멜 미술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지나온 그는 60년대 후반부터 <묘법> 연작을 시작한다. 이 연작은 물질과 행위의 대결로 나타나는 흔적을 기록한 뒤 다시 그 기록을 지워나가는 과정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으로, 1973년 처음으로 일본 동경 마츠무라화랑에서 발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그의 작업은 매체가 한지로 변화하면서 행위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행위와 물질이 서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행위가 스며들어 하나로 일치된 상태로 진화한 것이다. 또 유성에서 수성 물감으로 다시 한번 재료가 바뀌면서 그동안 어두웠던 화면에 서서히 색이 되살아난다. 90년대에 이후는 ‘지그재그’라고도 부르는 작품, 화면을 한지로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누는 것, 이랑의 단위들로 구성된 것, 작은 이랑을 서로 결합시켜 제작한 것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정상화 1932~
195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58-61 현대전, 현대미술가협회, 서울
1958-66 한국현대초대작가전, 조선일보 주최, 서울
1962-64 악뚜엘전, 서울
1976 현대작가 13인전, 일본 고베
1988 현대회화 70년대의 흐름, 워커힐미술관, 서울
1996 한국추상회화의 정신전, 호암미술관, 서울
2000 한국과 서구의 전후추상미술전, 호암갤러리, 서울
2002 사유와 감성의 시대, 국립현대미술관
2019 정상화 개인전, 갤러리 현대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고, 한국현대미술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받는다. 58년 한국현대작가초대전, 62년의 악뛰엘전, 63년 세계문화자유회의초대전 등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 경향은 한국전쟁 이후 어두운 사회적, 정신적 분위기를 심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67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이후 파리와 일본을 오가며 작품을 발표해 왔다.
70년대 이후는 그의 작품은 격자형식 구조가 무한히 반복되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뜯어내기와 메우기를 무한 반복하면서 자신과 투쟁을 벌이는 흔적으로 제작된 작품은 캔버스 위에 약 5밀리 두께의 고령토를 바르고 난 뒤 마르기를 기다려 캔버스 뒤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가로, 세로로 접는다. 마지막으로 캔버스 위의 고령토를 원하는 만큼 들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그는 “수직, 수평으로, 때로는 그물처럼 캔버스 위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무수한 네모꼴에 하나씩 물감을 얹고, 떼어내고 다시 덮어나가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간다.”고 말한다. 
  
 
하종현 1935~
1959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65 제4회 파리비엔날레, 파리
1978 제2회 파리국제현대미술제, 그랑빨레, 파리
1982 한국현대미술 위상, 동경도미술관, 동경
1985 가마쿠라 화랑, 동경
1993 제45회 베니스비엔날레, 베니스
1996 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갤러리 현대, 서울
2000 한국과 서구의 전후추상미술 : 격정과 표현,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2007 추상미술 그 경계에서의 유희,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2 하종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5 Tina 갤러리, 뉴욕
 
경남 산청에서 출생한 하종현은 1959년 홍익대를 졸업하면서 앵포르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62년 신상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65년에는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하는 등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60년대 후반에는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한국화단에 제안했다. 한편으로는 한국아방가르드협회에 회장으로서 있으면서 한국에서 실험미술에 선봉에 서기도 했다. 오브제, 설치, 개념미술 등 다양한 형식의 미술을 실험했던 이 시기 작품은 시대의 저항의식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0년대부터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접합> 연작을 발표하기 시작하는데,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붙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캔버스 천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 전면으로 배어 나오는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은 매체 즉 물질과 캔버스가 함께 활성화되는 공간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은 물감을 뒤에서 밀고 앞에서는 누르는 힘이 화면 전체에 배분되어 미세하고 균일한 효과를 나타낸다. 완성된 그의 작품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굵은 캔버스 천의 올이 가진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감상자에게 새로운 물성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최명영 1941~
196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67 파리비엔날레, 파리 프랑스
1971 까뉴국제회화제, 까뉴 슐 메르, 프랑스
1975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1981 한국 현대드로잉전, 뉴욕 브루클린미술관, 뉴욕
1996 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현대갤러리
2000 정신으로서의 평면전, 부산시립미술관
2008 한국의 추상회화 : 1958~2008, 서울시립미술관
2012 한국의 단색화, 국립현대미술관
2017 한국미술의 산책 Ⅱ- 단색화전, 뮤지엄 산
2019 개인전, 페이지갤러리 서울
 
황해도 해주에서 1941년에 태어나 한국전쟁 때 남으로 피난했다. 인천사범대학을 60년에 졸업했으나 교사로 나가지 않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예술세계로 들어섰다. 대학재학 시절 급우들과 함께 한국현대미술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모색하다 오리진협회를 창설했다. 1969년에는 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행위미술에 이론과 실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하여 시대를 이끄는 조형 미학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표적 추상미술의 하나인 단색화의 태동과 형성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70년대 중반부터 평면이라는 존재 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작업인 <평면조건> 연작을 이어간다. 작가 말에 따라 나의 작업은 단조로움과 무미함의 연속이라고 할 만큼, 끊임없이 무엇이 평면을 평면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조건을 시각화하는 작업이었다. 위아래라는 위치 좌표가 없는 평면에는 시간과 행위의 흔적을 기록할 수 있다. 캔버스 화면에 수평과 수직으로 수없이 이어지는 흔적들의 누적은 평면을 평면으로 인식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이외에도 물감 위에 지문을 반복해서 남기거나, 롤러를 사용하여 물감을 칠하는 행위를 기록하는 그의 제작방식은 평면만이 아니라 모든 사건에 대한 이성의 인식조건을 깨닫게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승원 1942~
196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67 한국 청년작가 연립전, 중앙공보관
1969 제6회 파리비엔날레, 파리, 프랑스
1970 회화 오늘의 한국전, 명동화랑
1973 한국작가 5인의 백색전, 동경화랑
1977 한국현대미술 단면전, 동경 센트럴미술관
1984 개인전, 동경 무라마쓰화랑, 일본
1995 현대미술 50년, 국립현대미술관
2000 개인전, 현대갤러리
2002 사유와 감성의 시대, 국립현대미술관
2019 서승원 : 동시성, 코리아소사이어티, 뉴욕, 미국
 
서승원은 서울에서 1942년에 태어났다. 60년대 한국현대미술 형성에 영향을 미친 여러 협회에 참가하였고, 특히 단색화의 탄생을 알리게 된 73년 한국작가 5인의 백색전과 77년 한국현대미술 단면전에 초대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볼 때 그의 작업이 한국 현대미술을 형성하는 시점에서 크게 일조했다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추상작품을 일관성있게 발표하면서 또 하나 함께 지켜온 것은 바로 <동시성>이라는 제목이다. 그의 일관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신념의 반영이며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개성적인 작품 제작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에 발표한 작품은 엄격한 기하학적 패턴과 오방색을 사용한 추상회화이다. 이런 작품은 기하학적 추상회화라고 불렸으나 곧 70년대부터 화려했던 색은 소멸하면서 점점 단색으로 변화한다. 이런 변화는 그의 작업이 단색화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는 서정적인 화면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기하학적 요소인 선들은 지워지고 색면의 형태들이 서로 겹치면서 공간을 형성해간다. 반듯한 사각형들은 흐트러지면서 대신에 사각형은 온화해졌으며, 부드러운 색채는 더욱 중첩되어 그 경계를 허문다. 중첩된 색면들은 공간확장과 색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이강소 1943~
196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73 개인전, 명동화랑, 서울
1975 파리청년비엔날레, 파리
1977 상파울로비엔날레, 상파울로
1988 한국미술의 모더니즘: 1970~1979, 현대미술관
1992 P.S.1 국제 스튜디오 아티스트 프로그램 참가, 뉴욕
2000 광주비엔날레, 광주
2003 이인성미술상 수상
2003 강물은 흐른다,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경주
2009 LA 표갤러리 개인전
 
대구에서 출생한 이강소는 71년 갈대밭(AG협회전), 73년 선술집(개인전), 75년 닭의 퍼포먼스(파리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작품 경향으로 추측하면 미술과 삶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예술활동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 다양한 실험미술과 개념미술 사이에서 자신만의 예술언어를 찾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2018년에 현대갤러리에서 이 작업이 그대로 재현되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70년대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구현대미술제’를 개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지만 80년대 들어서서는 예술활동보다는 회화와 조각으로 전환하여 작품제작에만 몰두한다.
이 시기부터 회화에 등장하는 소재로는 사슴과 오리, 배 등이다. 사물의 성장과 소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소통과 단절 그리고 실재와 그 이미지의 관계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작업으로 70년대부터 그가 해오던 작업의 연속이다. 다시 말하면 실재와 이미지가 평면에 들어올 때 파생하는 문제에 대한 탐구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명 오리 그림이라고 불리는 그의 작품은 실제로 오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불분명한 이미지일 뿐이다. 그는 스스로 개념미술가도 아니고 단색화가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그림이 지겨우면 조각하고 조각도 지겨우면 사진을 찍고, 마치 그의 회화에서 보는 것처럼 자유로운 바람을 따르는 예술방랑자를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김태호 1948~
197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75 제11회 아시아 현대미술, 우에노 미술관, 동경
1980 제12회 카뉴 국제회화제, Cagnes-sur-Mer France, 프랑스
1982 한국현대미술의 위상, 동경시립미술관, 동경
1988 한국미술의 모더니즘 : 1970-1979, 무역센터 현대미술관
2000 정신으로서의 평면성, 부산시립미술관
2008 한국추상회화 1958~2008, 서울시립미술관
2009 한국의 모노크롬’전, WELLSIDE GALLERY, 상하이
2012 한국 단색화전, 국립현대미술관
2015 김태호 ‘공간구조를 조작하다, 부산시립미술관
2017 개인전, 미주마 갤러리, 싱가포르
 
김태호는 부산에서 1948년에 태어났다. 77년 첫 개인전에서 수평선 뒤에 숨은 인체 형상을 그린 <형태>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후 80년대 중엽에는 캔버스 위에 종이를 붙여 행위의 흔적을 남기는 드로잉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93년에 재료를 한지에서 아크릴릭 물감으로 바꾸고, 95년부터는 <내재율> 시리즈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여러 층 물감을 쌓아 올리고 그것을 다시 나이프로 도려내는 엄청난 노동의 결과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표현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벗어나 회화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의식 전환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회화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해체하지 않고, 회화 자체의 자율성을 만들고 지켜내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이다. 대부분 회화는 형태와 색채를 사용하는 조형적인 작업으로 평면성을 구축하는데, 이런 회화의 평면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업은 공간구조를 만들어 색층의 중첩을 통하여 평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공간구조는 자유롭고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역동성과 통일성을 조합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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