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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대학원 단체전 : PECULIAR PORT

PECULIAR 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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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P
 
P님, 제가 그린 지도를 첨부합니다.
 
P님에게 지도를 보내기 전에 마지막 점검을 위해 섬을 한 바퀴 더 돌고 왔습니다. 계신 곳의 날씨가 어떤가요? 어제는 온종일 눈이 왔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눈의 대열은 선명했습니다. 여기서는 눈도 제각각으로 내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매일 모든 것이 바뀝니다. 어쩌면 이 섬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이 기억과 지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저는 여기서 기억을 이용해서 지도를 만듭니다. 지도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도구이지만, 여기서는 지도를 보면 길을 잃게 됩니다. 오늘은 정확한 지도도 내일은 진실이 아니게 되겠죠. 그렇지만 그것이 거짓은 아니지요. 그저 지나갔을 뿐입니다.
매일 새로운 지도를 만듭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문의 왼편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습니다. 섬에 어디서든 버드나무가 보입니다. 안개가 꼈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죠. 버드나무는 변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잎맥을 들여다보면 매일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버드나무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버드나무가 갑자기 레몬 나무가 되거나, 고사리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어제는 처음 보는 절벽에 다녀왔습니다. 절벽 근처에는 주황색, 붉은색이 뒤섞인 돌들이 대열도 없이 그저 쌓여있었습니다. 저는 그 돌을 하나만 챙겨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소파에 앉아 섬을 떠올렸습니다. 떠올릴수록 이 섬은 정확한 모양을 잃지만, 계속 그립니다. 앞으로도 제가 그릴 지도가 무수히 많겠지요. 매일 걷습니다.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걷는 일뿐입니다. 언젠가 제가 더는 걷고 싶지 않아질 때가 오겠지요. 그때는 제가 이야기를 하게 될까요. 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될까요. 그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가끔 지도를 보내도 될까요? P님에게 도착했을 때 그 지도는 더이상 지도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그저 그림이 되겠지만, 받아주세요.

그럼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From. P


<작가노트>
 
김규리에게 완벽한 장소란 없다. 완벽함 이라는 수식을 가진 장소는 잠시 머물 수 밖에 없는 미완성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완벽 함을 상징하는 모든 자리는 임시 공간적이 다. 작가는 완벽한 미완 이라는 모순적인 형 태에 주목하여 사물을 바라본다. 김규리의 <소파> 시리즈는 ‘소파’라는 일상적인 사물 의 상징성을 지우는 작업이다. 작가에게 소 파는 안정된 공간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안정된 공간에서의 소파 라는 것은 사물 자체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아닌 소비의 형 태로 형성되는 감정이다. 작가는 소파에 부여된 상징인 안정감과 여유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파의 형태를 일부 지우고 재구성한다. 임의적으로 지워낸 유연하고 우연한 흔적에서 작가가 포착한 완벽한 미완 이라는 모순이 강조된다. 이 과정에서 소파는 상징 이라는 두께의 포장이 벗겨지고 납작 해진다. 미완성으로 완성된 소파의 ‘자리’는 그저 가벼운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을, 관람객 은 목격하게 된다.
 
김유진은 생활 주변에 놓인 작은 오브제들을 주의깊게 본다. 작은 오브제를 확대함으로써 오브제를 되돌아볼 수 있는 확대경 같은 자리가 임시장소이다. 임시 장소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의 생활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들을 더 거대하게 인식하게 된다. < Needle >은 거대한 창이다. 유용하게 실생활을 풍족하게 만드는 바늘이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으며 작은 것 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선사한다. <산물>은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아래부터 쌓인 지층의 단면으로 표현된 이 작품에는 ‘미의 관념’에 대한 고찰이 시간적으로 축적되어 있다. 이것은 어쩌면 표정이고 가면이다. 인간은 마스크와 같은 가면을 쓰고 있으며, 나를 내비칠 때조차도 데이터화 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규칙적인 룰 사이에서 내가 짓고있는 표정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김지은은 물리적인 장소와 심리적 공간이 연계된 표상을 디지털 알고리즘의 의도된 왜곡을 통해 비선형적 영토를 구축한다. 표류를 부추기는 왜곡은 무르익는 것에 의존하지 않게 만들고 가시적인 것들을 흐릿하게 만든다. < Waiting Room >은 인정 혹은 호명의 테두리에 속하고 싶으면서도, 속하는 것을 두려워하는이들을 위한 임시적장소를 제공한다. 이 공간에서 수많은 표상들 은 납작 해져 겹겹이 쌓여있다. 경계는 흐릿해 졌지만, 그럼에도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임시적공간에서끝없이 머무를 수 없다. 사라짐이 필수적인 이 미완의 공간에서 움직임은 형식적 이더라도 쉬지 않고 행해진다. 이 움직임은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이 자리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 되며 그것은 인정을 요청하는 움직임 이기도 하다. 임시 자리를 불안해하면서도 필요로 하는 불안정한 이들에게 작가는 시시각각 변질되는 공간의 단면을 함께 저장해 주기를 요청하며, 대기실에서 의 시간을 확인받고자 한다.
 
류진호는 현실과 비 현실, 볼 수 있는 것과 느껴지는 것이 중첩되며 발생하는 혼란스러움을 공간으로 인식하고 주목한다. 일련의 감각적 효과를 배치하는 동시에 상대역으로 청중을 배치한다. 관찰자 이기도 한 청중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연결하는 사이에, 소외된 공간에 초대된다. 이 자리는 눈을 잠시 깜박이는 듯한 찰나 이며 임시적이다. < Blank >의 풍경은 일상적이지만, 화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익숙한 현실의 풍경과 낯선 이미지의 분위기가 자아내는 괴리감에서 우리는 서 있는 위치를 의심하게 된다. 깜박거리는 싱글 채널 비디오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침묵에 숨죽이게 되고, 시간을 주목하게 된다. < Fragments >의 이미지는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벽하게 반복되고 있지 않다.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지는 계속흐르고있다.우리의 삶은 멈춰있는 듯 한 작은 반복의 결합이다. 배치된 두개의 영상을 마주한 청중은 자연스럽게 연결 짓고, 각자의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조각들의 이미지가 연결된다. 작가의 기억에서 발현 된 이미지는, 청중의 기억으로 전환되고, 그 순간 화면 속 이미지와 머릿속 이미지는 대조 되며, 새로운 이미지로 재 구현된다.
 
이은빈은 식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정교한 매커니즘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환경과 정교한 관계를 맺는 식물의 매커니즘을 통 해 관람객들은 각자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임시 장소에 방문하게 된다. 이 초현실적인 풍경에서 관람객은 능동적 경험을 할수있다. < Gardener > 시리즈의 모티프는 미국 남부와 서부 여행에서 작가가 마주한 대자연이다. 자연의 매끈한 유기체적 감성과 그로테스크한 형태들을 조명하여 화면을 구성 한다. 낯선 화면은 단순히 시각적인 풍경을 넘어 작가와 풍경 사이에 축적된 경험을 공유한다. < Untitled >에서 작가는 다양한 국가에서 거주한 기억을 자연을 통해 드러낸다. 거주를 통해 마주 했던 경험과 자연의 다양한 패턴들이 혼합을 통해 새로운 풍경 을 만든다. 유동적인 선과 점은 공간과 공명하고, 이곳의 세계는 하나가 아닌 여러 세계가 교차하는 다겹의 세계이다. 실제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공간은 관람자의 집단기억에 호소하여 언젠가 겪은 혼종의 기억을 자극한다. 그렇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풍경은 친숙 하면서 낯설다.
 
이경수는 최추영과 함께 <<장소통역사>> 프로젝트를 진행중에 있다. 이들은 1인칭과 3인칭이 뒤섞이는, ‘나’라는 개인이 끊임없이 해체되는 곳을 임시적 장소라고 인식한 다. 불안을 겪는 사람이 파편 화 되는 방식을 감각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 이들 의 작업이다. < OSCILLATE >는 ‘물’을 불안의 테마로 삼은작품이다. <물에 빠져 죽는사람은 욕조에 잠긴 사람이다> 라는 최 추영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주인공인 수수는 비밀을 떠올리며 불안에 잠긴다. 최 추영은 ‘물’이라는 곳이 내면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라고 여기고, 수수는 물속에서만 ‘나’라고 발화할 수 있다. 이경수는 소설이 암시하는 수수의 불안을 시각적 오브제로 담는다. 물의 단면은 파도로, 뱀의 움직임으로 변화한다. 이곳의 시간은 내면의 시간으로 변화하고, 부유하는 불안 은 시각적으로 전환된다.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이 교차하는 화면을 통해, 소설을 VR 로 읽는다는 새로운 경험을 청중에게 선사 한다. 소설과 VR, 읽기와 재생,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한 회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차승민에게 임시 라는 단어가 지닌 인상은 작품을 만드는 행위를 은유 하게 만든다. 임시란 불안과 편안이 공존 하는 자리이고, 작가에게 작품은 만드는 일은 작품에서 가장 멀어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지만, 그 무엇도 약속할 수 없으며, 미지수가 가득한 자리가 임시적 장소이다. < Bawling Balling >은 3D 프린터가 아닌 3D 펜을 사용하여 뼈대 부터 겉모양까지 수 작업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이전에 겉치레라고 느껴졌던 행위를 잊은 채, 수련 하듯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과정 에서 납작 했던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나 이유는 흐릿해지고, 입체적인 물질성 만 남는다. 각각의 다양한 크기의 개체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형용할 수 없는 결과물이 작가가 끊임없이 탐구하고 의문을 품어왔던 예술이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임시적인 대답을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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