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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용 개인전 'Old Future'

Kwak, Seung-Yong's Solo Exhibition 'Old Future'

  • 작가

    곽승용

  • 장소

    갤러리 가이아

  • 주소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7-1 (관훈동)

  • 기간

    2019-10-10 ~ 2019-11-03

  • 시간

    9:00 ~ 9:00

  • 연락처

    02-733-3373

  • 홈페이지

    http://www.galerie-gaia.net

  • 초대일시

    2019-10-17

  • 관람료

갤러리 가기

            곽 승 용 개인전  'Old Future'

            10월 10일 - 11월 3일, 갤러리 가이아, 서울

 


곽승용은 홍익대학교와 프랑스, 파리 8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국내외의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한국 미술의 역량을 보여왔다.

 

그는 개인의 은밀성을 지닌 오래된 시간 속의 낯익은 아름다운 여인들을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들인다. 그녀들의 은밀한 시간은 한복의 아름다움에 더해져 멈췄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기 시작한다. 한복 안에 감추어진 누드는 전통과 관습에 억제된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상징적인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과거는 현재를 통해 끊임없이 환기되고 재해석되며, 다빈치의 ‘모나리자’, 앵그르의 여인들 등 오래되고 친근한 고전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작가의 섬세한 에어브러쉬 기법을 통해 '오래된 미래'라는 서사적 시간 속에서 자신들의 과거가 아니라 동시대의 우리 자신의 시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여인들은 새로움과 더불어 시간의 깊이를 더한 고요한 명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작가는 같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그림으로써 각각의 시간적 시차와 심리적인 편차를 보여준다. 그의 지극히 섬세한 에어브러쉬 기법에 의해 과거와 현재는 서로 천천히 스며들고 느린 기다림으로 오래된 시간 속의 이야기들이 우아하고 부드럽게 드러난다. 특히 여러 겹의 투명한 겹(layer)들을 통해 다층적인 시간성이 서로 섞이며 드러난다.


삶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예술은 우리가 꿈꾸며 찾는 삶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사랑한다. 곽승용 작가의 ‘오래된 미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서사적 시간으로서 오래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인 것이다.


[곽승용 약력]


1969년생

2002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대학원 졸업
1998 프랑스 베르사이유 보자르 졸업
199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16회)
2019 갤러리 가이아 (서울)
2014 갤러리 가이아 (서울)
2009 공산갤러리 런던 (런던)
2006, 2008 금호미술관 (서울)
2007 크리스틴박 갤러리 (파리)
2003, 2004, 2007 공산 갤러리 (대구)
1999 베르나노스 갤러리 (파리)
1998 피압장모네 갤러리 (파리) 등


주요 아트페어 및 옥션
2012~2019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서울)
2012~2019 Asia Contemporary Art Show (홍콩)
2006~2019 한국화랑미술제 (서울)
2011~2019 BAMA (부산)
2011~2019 AHAF 아시아호텔아트페어 (홍콩&서울)
2018 Art Stage (싱가포르)
2014~2019 Affordable Art Fair (싱가포르&홍콩&브뤼셀&런던)
2016 Coexistence 공존 프로젝트 (양평군립미술관)
2017 Art Central (홍콩)
2016~2017 Art Miami Context (미국)
2014 Art Southampton (뉴욕, 미국)
2013 Art Toronto (캐나다) 
2013 Houston Fine Art Fair (미국)
2008~2012 Art Asia Miami (마이애미, 미국)
2010~2011 Scope New York Art Show (뉴욕, 미국)
2009 SCOPE 바젤 (스위스)
2009 Art Beijing (중국) 등


케이 옥션 (한국)
마카오 옥션 (홍콩)
라라사티 옥션 (싱가폴) 등

  

​Old Future, acrylic on canvas, 130x162cm, 2019                                                               Old Future, acrylic on canvas, 130x162cm, 2019


​   

Old Future, acrylic on canvas, 97X130cm, 2019                                                                  Old Future, acrylic on canvas, 130x194cm, 2019


Old Future, acrylic on canvas, 130x194cm, 2019




[곽승용 평론]

인물과 풍경, 그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결들

                                                                                             - 고 충 환 (미술평론가)


인물과 풍경은 미술사에 등장하는 가장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소재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이 뭔가를 이끌어낼 만한 소지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여전히 이 소재에 천착하고 이로부터 동시대를 대변해줄 아이콘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것이 전형적인 소재이기에 오히려 시대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실상 현대미술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주요 작가들이나 작품의 경향을 보면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물과 풍경을 당대의 요구와 형식에 맞춰 각색하고 변주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인물만한 소재도 없을 것이며, 스스로의 삶의 조건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풍경만한 대상도 없을 것이다. 다만 정체성 상실이나 혼란과 같은 거의 모든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징후 혹은 증상, 그리고 자연과는 달리 인문학적 배경에 연동된 풍경에의 인식과 같은 달라진(그리고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삶의 질을 간과하지만 않는다면 차후로도 인물과 풍경은 한물간 소재이기는커녕 당대를 대변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항상적인 표상형식으로서 재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곽승용은 인물과 풍경이라는 전형적인 소재로써 자신만의 형식과 서사를 추구한다. 대략 <관찰, 기억, 상상, 그리고 우연 시리즈>(1998-2006), <반복된 만남>(2006), <오래된 미래>(2007) 등이 인물을 주제화한 것들이라면, <잠수함에서 바라 본 바다>(2006)와 <겨울로 가는 산양리>(2007)는 풍경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 일련의 그림들이 외형적으론 비록 구체적인 형상을 소재로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단순한 감각적 닮은꼴을 넘어 인물과 풍경의 본질적 측면으로 부를만한 어떤 비전을 보여준다.


관찰, 기억, 상상, 그리고 우연 시리즈

<관찰, 기억, 상상, 그리고 우연시리즈>로 명명된 일종의 초상화 연작에서는 이 일련의 그림들이 생산되는 과정이 느껴진다. 이는 무엇보다도 제목에서도 암시되는데, 경우에 따라선 이 시리즈 그림들에만 한정된 것이기보다는,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타의 다른 그림들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곽승용의 그림이 생산되는 과정에서의 물리적이고 심리적이고 미학적인 현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초상은 일단 관찰한 것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를 바탕으로 해서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대상이 불러일으키는 상상과 함께 미처 예기치 못한 계기들, 우연하고 돌발적인 계기들이 개입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순차적이거나 체계적이기보다는 상호 내포적이고 상호 연속적인 관계로 그 각 계기들을 구분할 수는 없다. 이렇게 초상은 주체화, 자기화, 내재화된다. 자기와 무관한 대상 혹은 소재에 머물러 있었을 누군가의 초상(익명적인 초상)을 소재로 해서, 이를 마치 거울처럼 자기 내면을 비춰주는 일종의 자기 초상으로 변용한 것이다.

이를 위해 캔버스에다 먼저 아크릴로 그림을 그린 다음, 표면효과를 위해 그 위에다 유화로 덧그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이질적인 매체와 방법의 혼용은 작가의 작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이로써 화면에서의 밀도감이나 물질성을 강조하는 한편 초상의 내면화의 경향성을 강화하게 된다. 그 과정 자체가 감각의 표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인간 내면의 초상을 불러내기 위한 미학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페인팅과 드로잉 그리고 각종 판법을 중첩시키는가 하면, 마블링 기법으로 떠낸 바탕 위에다 초상을 덧그리기도 한다. 그림에 따라선 크고 작은 꽃무늬로 장식된 화사하면서도 고풍스런 벽지를 연상시키는 배경화면 탓에 마치 인물이 일상적 공간에 있는 듯한 실재감과 함께 정적이고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자체 판법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는 지문과 사진전사기법이 도입되기도 한다. 특히 사진 이미지를 확대 복사한 그림에서의 인체는 무수한 망점들의 집합으로 대체돼 있는데, 이로부터 인쇄 매체시대에 있어서의 이미지의 존재 방식 즉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포되고 소비되는 당대적 현상에 대한 인식이 엿보인다. 때론 여기에다 사진전사기법으로 재현된 초상을 부분적으로 덧그려 뭉개기도 하고, 실사와 그려진 이미지를 대비시키기도 한다. 형상적이고 재현적인 이미지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대비시키는가 하면, 찍어내고 떠내는 식의 각종 이질적인 과정이 혼용되기도 하고, 에어브러시 기법과 더불어 물감을 흩뿌리는 식의 드리핑이나 타시즘 기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비정형의 얼룩을 초상에 중첩시키거나, 못처럼 뾰족한 도구나 빗처럼 일정한 간격을 지닌 도구를 이용해 스크래치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주로 흑백이나 갈색의 모노톤의 인물 초상에다 중첩시키는데, 이로부터 정적이고 내면적인 경향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마치 주름처럼 겹겹이 중첩돼 있어서 끝내 그 실체에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심연을 암시하는가 하면, 현대인의 존재론적 상처를 연상시킨다. 심연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고독이 표면 위로 배어나오는 것 같고, 인간 내면의 알 수 없는 불안이나 욕망, 페이소스가 느껴지며, 정형화된 언어의 형태로는 환원될 수 없는 감정의 어떤 앙금 같은 것이 감지된다. 마치 낡고 색 바랜 고서적이나 흑백사진으로부터 걸어 나온 듯한, 어둠 저편으로부터 부상하고 있는 듯한 이런 생생하면서도 관조적인 느낌의 초상은 캔버스에 그린 것보다는 종이에 그린 것에서 더 잘 드러난다. 아마도 즉흥성과 우연성에 바탕을 둔 감정의 즉각적인 표출에 강한 드로잉 고유의 성질이 종이의 재질감과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견 얼굴에 대한 연구 혹은 얼굴을 통해 본 형식에 대한 연구로 정의할 만한 이 일련의 그림들은 어지러울 만큼 온갖 다양하고 이질적인 형식들이 공존하고 중첩된 흡사 형식의 실험장을 방불케 한다. 말하자면 곽승용의 그림들 중 특히 인물을 소재로 한 그림들에서의 화면효과를 실험하는 사실상의 산실이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된 만남과 오래된 미래

곽승용은 <반복된 만남>으로 명명된 일종의 모자이크 형식의 그림들에서 특정인의 초상을 소재로 해서 이를 반복 변주하고 있다. 이는 그 개념이나 방법에 있어서 다만 그 모델(영국의 여배우 조안 폰테인)만 달라졌을 뿐 <항상 같은 미소>(2008)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동일인의 초상을 반복 변주한 이 그림들은 온갖 형식실험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특히 한 사람의 초상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 만한 내면이나 이면의 다양한 심리적 결을 암시한다. 가시적인 형상을 빌려 무의식적 자아나 얼터에고, 욕망과 본능과 같은 비가시적인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인의 이 이질적이고 다양한 초상들은 친근하면서도 낯선데, 그 자체 얼굴과 머리를 구분하는 질 들뢰즈의 논법을 떠오르게 한다. 즉 얼굴은 친근하고 머리는 낯설다는. 얼굴이 일종의 사회학적 기호라고 한다면, 머리는 욕망의 표상형식이다. 흔히 표정을 관리한다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얼굴은 조작되고 연출되고 각색된 인격의 파사드(전면)랄 수 있다. 이에 반해 머리는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억압한 욕망이며, 의식이 억압한 무의식이다. 여기서 얼굴이 친근한 것은 일종의 가면의 정치학에 의해 지지되는 제도화된 삶에 길들여진 탓이며, 머리가 낯선 것은 제도화된 주체가 억압한 미처 제도화되지 않은 것들,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것들, 야생이나 야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체는 제도화된 주체(얼굴로 나타난)와 제도를 거부하는 주체(머리로 암시되는)로 분리된다. 야누스나 이중인격과 다중인격, 그리고 도플갱어는 이렇게 분열된 주체를 증명해주는 표상형식들이다. 동일인의 다양한 초상의 스펙트럼을 전개한 이 그림들은 제도적 주체에 의해 억압된 자연성과 본성을 추적하고, 그 흔적을 기록한 일종의 고고학적, 인문학적, 골상학적 아카이브처럼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오래된 미래> 연작에서 서양여자의 누드와 전통적인 한복을 중첩시키고 있다. 흑백으로 표현된 인체와 화려한 색상의 한복 이미지가 중첩된 이 이질적인 결합은 정체성의 혼란과 상실 혹은 방황과 관련이 깊다. 여기서 서양여자의 누드는 일종의 환상으로 기능하는 것이며, 한복은 뿌리 즉 전통적 현실에 속하는 것이다. 환상과 현실은 항상 어긋나기 마련이며, 언제나 환상이 현실보다 강하다.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나 현실을 부정하게 해주는 계기가 환상이기 때문이다. 환상은 말하자면 언제나 부정성의 계기로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섹스어필하는 서양여자(환상)와 어울리지 않는 한복(현실)은 그 이면에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담론을 상기시킨다. 서양여자는 미인의 기준이며(미인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미의 기준이며(미는 쾌를 유발한다), 미학의 기준이며(감각적 쾌의 학적 인식인), 선의 기준이다(선미합일사상). 이처럼 부정된 현실을 긍정하고 복원하기 위해선 환상을 폐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폐기를 실천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서양여자가 다름 아닌 미(미학)의 기준이며, 선(윤리학)의 기준이며, 에로티시즘(심리학 즉 욕망의 학)의 원형으로서 개별주체의 의식 속에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로서 내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초상들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이국적인 분위기, 이 친근하면서도 낯선 분위기는 물론 10여 년간 외국에서 체류한 곽승용의 개인적인 경험에 연유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단순히 표면적인 현상만으로 볼일은 아니라는 거다. 그 이중적인 인상, 이율배반적인 인상,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지금처럼 탈의 시대나 혼성잡종의 시대에 오히려 더 친숙하고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이러한 인상은 그러니까 일종의 존재론적인 이질감이나,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낯설어하는 자기소외의 무의식적 발현으로 읽혀진다는 거다. 나아가 정체성 상실과 혼란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자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란 제목은 미래가 이미 전통 속에 예비돼 있다고 본 발터 벤야민의 진단을 상기시킨다. 가스등이 샹들리에로 대체되고, 백화점의 쇼윈도가 미술관을 대신하는 시대, 모든 새로운 것들이 재빠르게 전통 속으로 편입되는 시대, 환상이 현실을 견인하고 창조하는 시대, 끊임없이 환상이 재생산되는 시대, 에로티시즘 혹은 포르노그래피가 미의 규준으로 제시되는 시대, 오래된 미래, 이미 충분히 낡아버린 미래에 대한 공감이 느껴진다(실제로 이 일련의 그림들은 시대와 역사의 아카이브 같고, 환상의 박제화 같다).


풍경화 연작

곽승용은 이렇듯 인물화와 함께 <잠수함에서 바라 본 바다>와 <겨울로 가는 산양리>에서는 일련의 풍경화 연작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잠수함에서 바라 본 바다>는 작가가 직접 잠수함에서 그린 그림인지 어떤지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다. 문제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가없는 수평선이 작가의 내면과 연속된 일종의 심의적 풍경을 예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평선을 기준으로 하늘과 바다를 가름하는 이 그림들은 특유의 심플한 구조로 인해 미니멀리즘의 전형적인 형식을 상기시킨다. 형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발견한 풍경으로 정의할 만한 이 그림들은 순수한 관념의 산물이기보다는, 그 속에 추상의 계기를 내포한 형상을 현실 속에서 찾아낸 것이란 점에서 설득력을 더한다(현대미술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처럼 창조보다는 발견과 인식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이와 함께 <겨울로 가는 산양리>에서는 목탄으로 그린 부드러운 톤을 바탕으로 해서, 최소한의 실루엣으로 형상을 한정하고, 이에 따른 개략적인 분위기를 통해 오히려 풍경의 풍부한 감각적 결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자연의 외관에 대한 단순한 감각적 닮은꼴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로부터 감지되는 분위기를, 그리고 자연과 주체가 접속된 연속성의 계기를 드러내고 암시한다. 때론 목탄으로 그려진 이미지를 바니시를 이용해 부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하고 있어서 반투명한 막으로 한 꺼풀 덧입혀진 것 같은 아련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 시간의 켜들이 중첩된 것 같은 아득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자의식으로 오염되기 이전의 풍경, 인간의 인식으로는 거머쥘 수 없는 풍경, 개념이나 감각의 대상으로서보다는 원초적인 질료로서 다가오는 풍경을 보여준다. 그 실체를 붙잡을 수 없는 심연의 표상으로서의 풍경이나, 풍경 자체보다는 이제 막 지나쳐온 풍경에 대한 여운과 잔상을 불러일으킨다.

곽승용의 그림들은 이렇듯 구체적인 형상을 소재로 취하고는 있지만, 대상의 감각적 닮은꼴에 한정돼 있지는 않다. 가히 형식의 실험실을 방불케 하는 초상화 연작에서는 얼굴의 이면에 가려진 무의식적 자아를 추적하고 그 흔적을 기록하는가 하면, 풍경화 연작에선 풍경과 자신의 내면이 연속된 일종의 심의적 풍경을 제안한다. 이로써 초상이나 풍경이 전형적인 소재인 것만큼이나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형식의 지점들과 함께 감각적 표면 저편의 비가시적 지층이나 결들과 대면케 한다.


[곽승용 작가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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