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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경 초대전 <중첩하는 공간들의 이야기; 2019 정문경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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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정문경

  • 장소

    갤러리 롤랑

  • 주소

    서울 종로구 평창길 38 (평창동)

  • 기간

    2019-10-12 ~ 2019-11-09

  • 시간

    13:00 ~ 19:00 (휴관일 : 일, 월요일 )

  • 연락처

    010-3098-1928

  • 홈페이지

    http://

  • 초대일시

  • 관람료

    무료관람

갤러리 가기

                                                갤러리 롤랑 개관기념

                                                    정문경 초대전

                      <중첩하는 공간들의 이야기; 2019 정문경의 지금>

 

기간: 20191012() 119()

장소: 갤러리 롤랑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43)

Gallery-rolland.com/ gallery.rolland@gmail.com

-1:00pm-7:00pm, 1-8pm, 1-5pm/ 일요일 월요일 휴관

갤러리 롤랑 010 3098 1928

 

< 들여다 볼 수 없는 삶의 속살을 뜨겁게 품어보는 전시 >

갤러리 롤랑(대표 박신영)1012일부터 119일까지 개관기념으로 중견화가 정문경 초대전을 개최한다

 

박신영, 롤랑은 2012년부터 가능성과 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복합예술 실험을 해오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예술과 생활의 경계에서 연결점을 찾는 작업을 지속해 온 결과, 현대미술과 소통하는 문화(cradle of culture)의 산실로서 20191012일 삼청동(삼청 테니스장 건너편)에 갤러리 공간을 열게 되었다,.

 

개관 전시인 정문경의 지금 전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정문경의 밀레니엄 작업인 2000년 이후 미국에서의 꼴라쥬 작업과 한국에서의 비단 작업을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작품 주제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삶의 속살을 반추하는 여정으로 총 80점이 관람객과 만난다.

 

특히 최근작은 여성의 속옷을 분해하여 재조합한 꼴라쥬로 이루어진 바닥 화면과 그 위에 일정 공간을 두어 비단의 막을 씌운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인간의 몸과 가장 밀착되어 있는 속옷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외부에서는 잘 안보이는 물체로서 정문경의, 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속 모습에 대한 은유이다. 보일 듯 잘 안보이는 반투명의 비단에 여기저기 구멍을 뚫은 이유는 가까이 다가가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제안이다

 

또한 높은 굽으로 상징되는 하이힐은 여성의 대외성을 차용한 오브제이다. 여성이 돋보이고 싶은 자리에 갈 때 착용하는 물체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하는 관계 지향적인 물체이자 을 상징하는 물체이다. 작가는 갤러리 공간에서 의 표면으로서의 하이힐과 그 안에 들어가 숨쉬는 발과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전체적인 시선 혹은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 본다. 그 안에 속옷과 하이힐이 있다. 속옷과 하이힐이 상징하는 복합적인 구조 속에 여성인 자신이 있으며 자신을 통해 이 시대의 삶을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지금’‘여기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2019년 정문경의 작업이다.

여성을 키워드로 발생하는 지금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내야 하는 이 땅 여기에서, 정문경의 작품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데 그 매력이 있다.

 

갤러리가 이야기를 담아내는 장소라면, 정문경 작품속 오브제에 대한 이야기는, 앙증맞은 유리병에 담고 싶은 이야기부터, 스크래치 가득한 항아리에 담고 싶은 이야기까지 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 이야기들을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보이고 싶었다. '중첩하는 공간들의 이야기; 2019 정문경의 지금전시에서는 반짝이고 우아한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이야기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어느덧 숙연한 명상의 시간을 대면하는 사람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개관을 기념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갤러리 롤랑은 전시될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사회에 어떻게흘러갈지에 주안점을 두고, 작가와 호흡을 맞추길 원한다. 갤러리 롤랑은 그렇게 쌓여있는 결과물들의 흐름을 이어주는 장치로서 존재한다. 이 공간은 전시 특성에 맞춰 뮤지션, 디자이너, 영상제작자들이 교류하는 아뜰리에 형태로 발전되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로 재 소비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 작가와 관객과의 적당한 맞닿음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 중에는 전시와 연계된 이벤트로 갤러리 정원에서 가을 야외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정문경의 작업을 접한 재즈 피아니스트 민희온이 작품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곡을 완성해 전시 오프닝에 연주하는 뜻 깊은 행사를 마련한다. 연주자는 정문경의 비단 속 면의 고정된 꼴라쥬 작품과 겉의 반투명하고 유연한 질감의 비단을 저음(내면)과 고음(외면)으로 표현한다. 연주 내내 왼손은 최소의 움직임으로 저음을, 계속 움직이는 오른손은 고음을 연주한다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한국의 구두 디자이너 브랜드, Salond de Ju의 협찬 작업이다. 정문경의 반투명한 비단에 뚫린 구멍, frame 속으로 들여다 보이는 빛과 그림자의 색들. 그리고 Salond de Ju2019 FW ‘Coloring in the Frames, Framing in the Colors’ 라는 주제와의 관계가 중첩되어 깊이를 더하며 비단 막 속의 오브제로서의 하이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하이힐, 속옷. 지금 만날 수 있는 정문경의 작업이다. 2019. 지금 여기에 펼쳐지는 정문경의 표면은 몸을 감싸는 옷들이다. 구체적인 옷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옷, 욕망의 옷이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의 옷이다. 옷은 신체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신체를 억압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강제가 옷을 통하여 규정지어지거나 표현 되기도 한다. 옷을 통하여 신체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드러내기도 한다. 거기에는 사회적 규범, 도덕, 억압, 권력 등이 있다. 또한 개인의 성향과 취향, 내면의 보이지 않는 무엇도 있다. 그런 것들 보이게 하는 표면, 옷과 하이힐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고요한 새벽, 또는 오후 2시를 넘기는 초여름의 풍경처럼 조용하며 그 조용한 울림은 공명한다 지금 여기 내가 있고 당신이 보는 것은 표면인 밖이며 그 밖은 안과 연결되어 있고, 안은 또한 세상 밖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파동의 여운이 있는 견과 견 사이에 옷과 하이힐이 등장한다. 옷과 하이힐은 층층이 겹을 이루고 있는, 흔들리는 견들의 사이에 있다.

 

<작가 소개>

정문경은 미국 뉴욕 주립대에서 fine art를 전공,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후 한국과 미국으로 작업과 생활의 근거지를 옮기며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15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단체전을 한국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스위스 인도 러시아 독일 베네주엘라 등에서 했으며 중앙대학교, 인천대학교에서 겸임교수, 강사로 후학을 지도해왔다.

연구 및 출판으로는 석도 화론에 관한 연구, “Great Depression and Art Activity: Role of Government”, 단행본으로는 한국의 춤이 알고 싶다(유인화 글/정문경 그림, 동아시아출판사, 2012), 한 줄의 느낌(유지애 글/정문경 그림, 문예 운동사, 2010) 등이 있다.


지금, 표면은 오래된 시간들, 내부들을 가진다.
중첩하는 이중의 공간, 그리고 말들(Words)- 2019 정문경의 지금
이호영(미술학 박사,)
 
1.
지금, 여기
펄럭이는 비단 막이 빈 공간을 막고 늘어져 있다. 막은 중첩되어 있어 저 곳으로 가기 위해선 손으로 막을 걷으며 가야한다. 공간은 비단 막에 의해 반쯤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한 모습이다. 거기에 가기 위해선 막에 피부를 닿아야 한다. 손과 머리와 어깨에 부딪히는 반투명의 비단 막. (). 안의 이미지를 선연하게 보기 위해서 그 막을 몸에, 피부에 받아들여야 한다. 저 곳의 이미지는 피부에 부딪혀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2.
피부는 몸의 표면이다. 피부는 몸을 감싸고 몸의 표면을 이룬다. 우리가 시선으로 만나는 것은 표면이다. 표면을 통해 그 안, 내부를 감각한다. 몸의 표면을 감싸는 것은 옷이다. 2의 표면 혹은 최종 몸의 표면은 옷으로 종결된다. 신발과 속옷도 포함되어 있는 옷. 피부의 표면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최종의 표면 옷을 통하여 표현된다. 한 몸이 가지고 있는 욕망, 속성, 취향, 지위, 억압, 시간 등이 옷을 통하여 말해 진다. 표면을 만나는 우리의 시선은 그 옷의 표면을 통하여 그 내부의 말들을 읽는다.
 
3.
하이힐, 속옷. 지금 만날 수 있는 정문경의 작업이다. 2019. 지금 여기에 펼쳐지는 정문경의 표면은 몸을 감싸는 옷들이다. 구체적인 옷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옷, 욕망의 옷이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의 옷이다. 옷은 신체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신체를 억압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강제가 옷을 통하여 규정지어지거나 표현되기도 한다. 옷을 통하여 신체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드러내기도 한다. 거기에는 사회적 규범, 도덕, 억압, 권력 등이 있다. 또한 개인의 성향과 취향, 내면의 보이지 않는 무엇도 있다. 그런 것들 보이게 하는 표면, 옷과 하이힐이다. 작가의 표면을 이루고 있는 속옷과 하이힐. 지금 여기 정문경의 작업 속이다. 비단으로 이룬 견과 견 사이에 옷과 하이힐이 등장한다. 옷과 하이힐은 층층이 겹을 이루고 있는, 흔들리는 견들의 사이에 있다.
 
4.
지금은 지나간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시간의 표면이다. 지금이라는 것은 지난 시간들이 층층이 겹쳐져 이룬 시간의 탑. 오래된 시간의 지층 위이다. 정문경의 지금의 작업은 지난 시간의 작업의 과정과 삶의 층들이 만들어진 지금이다. 지금의 표면 안에는 오래된 기억과 사건과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많은 시간의 겹들이 있다. 그 시간의 겹들은 상호 관련이 있거나 관계없이 독립적인 사건으로 지나간 것도 있고,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것이 병립하기도 한 것들도 있다.
 
5.
역사의 시작, 작업의 탄생
생을 한 마디로 말하거나 정리할 수 없듯이 한 생에는 수없는 사건과 사건, 기억과 기억들이 얽히고설킨 채로 있다. 정문경의 습작기는 한국화를 전공으로 대학에 입문하면서 시작된다. 한국화, 한지와 먹을 사용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작업. 비단의 스밈과 여백의 공간이 정문경의 작업 전반에 나타나는 것은 한지와 먹의 작업, 그리고 여백의 공간처리의 특성을 가진 전통적인 한국화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한다.
 
6.
뉴욕, 그리고 19972003
뉴욕에서 회화를 공부하면서 정문경은 근원에 대하여 작업의 시선을 모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여행. 작업의 근간. 자신을 돌아보는 것. 자신을 찾는 것. 작품의 길. 그 길의 시작이 뉴욕에서 시작한 회화의 길이다. 작품은 흔적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는 과정 속에서 남아가는 길. 화면이 만드는 길들을 따라가는 작업을 추구한다. 그리는 행위와 그 행위를 지우고 남는 흔적들이 정해지지 않는 화면의 길을 만든다. 작가는 그 정하지 않는 길 위에서 선택과 선택을 거듭한다. 그 과정. 그 선택과 지움의 과정이 남아 시간의 축첩을 이루고 공간을 울림으로 만든다. 그 울림의 공간에서 나타는 것은 작가의 호흡이고, 그 호흡이 만든 숨결의 길이다.
 
7.
이중의 구조, 겹쳐지는 공간은 한국화의 수업과 뉴욕에서의 회화 공부라는 이중의 언어에서부터 시작한다. 전혀 다른 방식의 수업. 사물을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 표현의 낯섦. 한국 전통화의 방식과 서양 회화의 표현 방식은 재료만큼이나, 언어만큼이나 낯설게 다가들었을 것이다. 삶의 방식이 다른 것. 문화의 소통이 다른 것. 전혀 다른 구조가 삶의 방식으로 다가들어 있는 것. 일반적이 삶과 화가의 삶. 말의 방식과 회화의 방식. 이중의 구조, 다층적 구조의 삶과 다중 언어의 표현은 그러므로 정문경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기저를 형성하는 골격이 되었다.
 
8.
꼴라쥬- 다층적 삶의 구조 20042013
꼴라주는 그러한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언어가 들러붙은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결과로 읽힐 수 있다. 초기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향한 드로잉, 그리고 지움의 흔적, 길 찾기 회화에서 꼴라주 방식의 회화로 전환에는 이중의 구조를 지나 의도하지 않고 들러붙는 삶의 모순적이고, 운명적인 현상의 탐구라고 읽을 수 있다. 하나의 현상에는 그 안과 밖에 수많은 보이지 않는 다른 구조의 말들과 힘들이 작동하고 있고, 그 힘들은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도 외부의 힘들이 작동해서 강제하는 결과들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잡지의 문자가 화면에 등장하고, 이질적인 천과 종이가 화면에 들어와 자리하며 그러한 것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드로잉과 처리하는 색들이다.
 
9.
작품 속에 문자의 등장은 문명 속에 있는 삶, 생이 문명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의미된다. 또한 일상에서 사소하게 볼 수 있는 사물(오브제(object)로 붙여진)도 화면에 등장한다. 낯설게 등장하는 네모, 동그라미의 이미지가 나타나고, 그 붙여진 이미지들은 겹쳐지거나 일정한 관계, 거리, 공간을 유지하여 배치됨으로서 화면의 긴장과 공간의 호흡을 이끈다. 낯설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큰 화면 안에서는 부분이 된다.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것. 그 부분들은 균일하지 않고 충돌하거나 상충되기도 한 모습을 가진다. 물론 비슷한 부류로 분류될 수 있는 이미지도 있으나 균질하게 등장하지는 않는다.
 
10.
두 개의 세계, 혹은 그 너머 20142017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중적이고 다층적 구조를 가지는 모습의 정문경의 회화는 견을 이용하여 밖과 안을 형성하는 두 개의 세계, 혹은 그 너머시리즈에 와서는 명확해진다. 하나의 시선으로 볼 수 없고, 단일한 구조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 안의 이미지와 밖의 이미지가 이루는 두 개의 층. 두 가지 다른 층이 모여 겹쳐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것은 삶의 다층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국에서의 삶과 미국에서의 삶이 다르고, 여성으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이 다르지만 동시에 같은 구조에 있는 것. 하나의 단선적인 말로 자신이 겪어왔던 삶과 현실의 삶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는 것. 작품은 그리하여 다른 두 층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하나의 이미지는 그러므로 다른 여러 의미들을 함축하고 표면이 된다. 그 표면, 작품이 우리의 눈앞에 있다.
 
11.
그 안과 밖을 이루는 층은 한 시대의 힘이 작용한 층. 즉 무수한 미디어에 의해 작동된 현재. 매트릭스(matrix). 잘려진 문맥들이 들어앉아 사라지지 않는 삶. 미디어에 의해 작동하는 현대인. 잡지와 오브제는 그러한 구조를 상징한다. 보이는 것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으나 분명 있는, 그리하여 작동하는 힘. 가상현실은 가상현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나 구체적인 힘으로 작동하는 것. 그러한 힘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디어의 힘이다. 작가는 그러한 힘이 작동하는 구조를 작품의 주요한 층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화면의 한 층은 미디어를 상징하는 것으로 채우고 다른 층은 한 겹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두 개의 다른 층들이 서로를 작동하여 보여주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며 하나의 큰 매트릭스를 만든다. 그 매트릭스는 보이지 않으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으나 있는 힘들 사이에 인간이 있다. 작가는 그러한 말들을 작품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한다.
 
12.
다시 지금
중첩하는 이중의 공간, 그리고 말들 2018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살펴본 것과 같이 정문경의 작품은 자신을 향해 있다. 그 자신은 늘 지금이라는 지평에서 읽고자 하며, 바라보고자 한다. 그 시선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층층이 겹쳐 지금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지난 시간이 만든 주름의 표면이다. 그 주름 안에서 지난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겹쳐서 만난다.
하이힐, 속옷의 해석은 작업의 방향을 자신의 신체에 시선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작. ‘자신의 신체에 늘 닿아있는 것들로부터라는 것. 실재하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 속옷이다. 보이지 않으나 있는 것들. 자신으로부터 시작은 예전의 시작을 돌아볼 기회를 만들고, 다른 시선으로 보는 계기를 만든다. 늘 처음처럼 하나로부터 시작하는 작업은 그 구조를 보면 늘 같은 시점에서 시작하는 듯 보이나 결코 같은 지점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는 없다.
 
13.
예전 시작의 시간은 지난 시간의 주름 안에 들어가 있으며 역사의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그 시간은 지금을 이루는 동인으로 작용함으로서 살아있는 시간이 되었다. 지구의 괘도가 그러하듯 늘 같은 지점을 돌아 나오는 길들은 같아 보이지만 결코 같은 길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전체적인 시선 혹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거기에 속옷과 하이힐이 있다. 속옷과 하이힐이 상징하는 복합적인 구조 속에 여성인 자신이 있다. 그 자신을 한 걸음 다가서서 혹은 한 걸음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을 통하여 여성의 삶을, 이 시대의 인간의 삶을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2019년 정문경의 작업이다.

   
19x23,5cm,  After Rain, mixed media with silk, 2016                        19x23,5cm, In the Kitchen, mixed media with silk, 2016



  
19x23.5cm  Colors Within,  media with silk, 2016                            19x23.5cm  Morning with Air,  mixed media with silk,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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