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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흙 - 器 두 번째》

Lee, Sangwon 《Soil-Ceramic 2nd》

  • 작가

    이상원

  • 장소

    이상원미술관

  • 주소

    강원 춘천시 사북면 화악지암길 99

  • 기간

    2022-02-18 ~ 2022-06-26

  • 시간

    9:00 ~ 9:00

  • 연락처

    033-255-9001

  • 홈페이지

    http://www.lswmuseum.com/

  • 초대일시

  • 관람료

갤러리 가기
이상원 화백의 2022년 신작전에서는 2021년에 이어 도자기를 소재로 한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많은 화가들이 공예품인 도자기를 그림으로 그릴 때는 백자 위주의 도자기가 주를 이루고, 도자기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조형적 특성을 평면회화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다루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상원 화백은 ‘흙’이라는 대주제를 전제하고 도자기를 작품의 소재로 다룬다. 마치 작품은 토기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질박함과 소박함을 특징으로 한다. 황토와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황금빛과 붉은빛이 주로 사용된 온화하고 밝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올해로 88세가 되는 이상원 화백은 노년을 맞이하면서 생명의 기본적인 근원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흙은 생명체에게 친숙하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화백의 흙에 대한 경외감과 애정은 재료로써 황토를 사용하는 것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재료로 사용된 황토는 작품에 담백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황토를 재료 사용하게 되면서 이상원 화백은 작품 제작에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흙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를 소재로 하고, 황토를 재료로 사용하는 점에 흙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흙-器’ 작품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흙-器’ 전시 작품은 한층 밝으면서도 담백해졌다고 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고난을 극복하는 인간상에 몰두했던 이상원 화백이 이제는 생명에 대한 감사와 그 토대가 되는 자연-흙-에 대한 애정을 작품을 통해 펼치게 된 것이다.

전시작은 25호 10여점, 50호 20여점이며 한지위에 먹, 유화물감, 황토를 사용하여 제작했다. 신작전이 시작되는 2월 18일에는 한동안 전시되지 않았던 이상원 화백의 대표작 시리즈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작품은 ‘동해인’, ‘마대의 얼굴’, ‘해변의 풍경’ 등이며 이상원 화백의 주요 작품과 최근작을 함께 감상하는 갚진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상원 화백은 1935년에 강원도 춘천 유포리에서 태어났다. 샘밭이라고도 불리는 유포리는 소양강댐을 근거리에 두고 나지막한 산비탈에 자리한 곳이다. 지금도 과수원과 축사가 있는 시골마을이다. 일제 강점시기 소박한 농촌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상원은 농사 이외에 다른 생업을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자라났다. 농업학교 재학시절 한국전쟁을 맞이하여 친형과 나란히 학도병으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경험이 반세기가 훨씬 지나도록 그가 작업하는 작품의 이미지와 정서를 지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청년시절에는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이주하여 영화간판과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상업미술가로 활동하였다. 청년 이상원은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일에서 누구보다 성공가도를 달렸다. 30대 중반인 1970년에 안중근의사의 단지(斷指)된 손이 표현된 영정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현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문교부 공인 안중근의사 영정 초상화로 선정됐고 안의사 기념관에서 오랜 기간 전시되기도 하였다.
이상원은 상업초상화가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독학으로 전통 수묵화를 연마하였고,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주문에 의한 초상화 제작을 물리치고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국전에도 응모하였지만 심사위원들의 논쟁을 야기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라는 작품은 입선에 그치고, 78년 새롭게 시작된 민간 공모전인 1회 중앙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에서 특선과 동아미술상으로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공식적인 화가로의 데뷔는 공모전을 통해서였지만 이후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거의 50세가 다 되어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이상원의 작품은 향토적이면서도 극사실주의 화풍이었고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묵묵히 짊어진 민초들의 삶을 반영하는 감성을 드러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미술관의 초대전으로 블라디보스톡 소재 연해주주립미술관, 국립 중국미술관, 생 루이 살페트리에 성당, 상하이미술관 등지에서 전시하게 되었다. 1999년에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국립 러시안뮤지엄에서 초대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잇따른 해외 미술관 초대전이 한국 언론에 소개되면서 이상원 화백은 ‘입지전적 독학 화가’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90년대 후반에 발표되기 시작한 <동해인 연작, 1997~>은 한국의 어부, 농부 등 거친 일터에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하고 남루한 인물을 그린 작품으로 국내 및 해외 관람객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이상원 화백의 여정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고집스럽게 만들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화백은 해외 전시가 한창이었던 2000년에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했다.
자신이 태어났던 유포리보다 더 깊은 산속 마을에 컨테이너 작업실을 마련하여 현재까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가 그려왔던 수많은 사라져가는 풍경과 사람들처럼 노년을 맞이하여서도 예술의 혼을 쏟아 부으며 끊임없이 작업하고 있다.


■ 작가소개

이상원 화백은 1935년에 강원도 춘천 유포리에서 태어났다. 샘밭이라고도 불리는 유포리는 소양강댐을 근거리에 두고 나지막한 산비탈에 자리한 곳이다. 지금도 과수원과 축사가 있는 시골마을이다. 일제 강점시기 소박한 농촌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상원은 농사 이외에 다른 생업을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자라났다. 농업학교 재학시절 한국전쟁을 맞이하여 친형과 나란히 학도병으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경험이 반세기가 훨씬 지나도록 그가 작업하는 작품의 이미지와 정서를 지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청년시절에는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이주하여 영화간판과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상업미술가로 활동하였다. 청년 이상원은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일에서 누구보다 성공가도를 달렸다. 30대 중반인 1970년에 안중근의사의 단지(斷指)된 손이 표현된 영정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현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문교부 공인 안중근의사 영정 초상화로 선정됐고 안의사 기념관에서 오랜 기간 전시되기도 하였다.

이상원은 상업초상화가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독학으로 전통 수묵화를 연마하였고,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주문에 의한 초상화 제작을 물리치고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국전에도 응모하였지만 심사위원들의 논쟁을 야기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라는 작품은 입선에 그치고, 78년 새롭게 시작된 민간 공모전인 1회 중앙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에서 특선과 동아미술상으로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공식적인 화가로의 데뷔는 공모전을 통해서였지만 이후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거의 50세가 다 되어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이상원의 작품은 향토적이면서도 극사실주의 화풍이었고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묵묵히 짊어진 민초들의 삶을 반영하는 감성을 드러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미술관의 초대전으로 블라디보스톡 소재 연해주주립미술관, 국립 중국미술관, 생 루이 살페트리에 성당, 상하이미술관 등지에서 전시하게 되었다. 1999년에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국립 러시안뮤지엄에서 초대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잇따른 해외 미술관 초대전이 한국 언론에 소개되면서 이상원 화백은 ‘입지전적 독학 화가’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90년대 후반에 발표되기 시작한 <동해인 연작, 1997~>은 한국의 어부, 농부 등 거친 일터에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하고 남루한 인물을 그린 작품으로 국내 및 해외 관람객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이상원 화백의 여정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고집스럽게 만들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화백은 해외 전시가 한창이었던 2000년에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했다.
자신이 태어났던 유포리보다 더 깊은 산속 마을에 컨테이너 작업실을 마련하여 현재까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가 그려왔던 수많은 사라져가는 풍경과 사람들처럼 노년을 맞이하여서도 예술의 혼을 쏟아 부으며 끊임없이 작업하고 있다.




이상원作 도자기 Ceramic 2021



이상원作 도자기 Ceramic 2021



이상원作 도자기 Ceramic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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