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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배 · 박선영 조각展 “행복한 집으로 가는 여정”

Kim Geun-bae, Park Sun-young Sculpture exhibition

  • 작가

    김근배 박선영

  • 장소

    장은선갤러리

  •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6길 13-3 (운니동)

  • 기간

    2020-02-05 ~ 2020-02-22

  • 시간

    10:00 ~ 18:00

  • 연락처

    02-730-3533

  • 홈페이지

    http://www.galleryjang.com

  • 초대일시

    2020-02-05

  • 관람료

    무료관람

갤러리 가기
인생의 여정과 일상 속 행복감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조각가 김근배와 조각가 박선영의 전시를 장은선갤러리에서 한다. 두 작가는 본인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다.


여정,동,70X60X10cm, 동, 2020_김근배作


김근배 조각가는 대리석의 거친 면을 부드럽게 다듬고 동에 청량한 색을 입히는 작업으로 자신이 겪은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여정, 30X12X45cm, 대리석,동,2018_배作


박선영 조각가는 종이를 바느질해 행복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동화책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다.
 

대장정, 50X50X130cm, 동,대리석,스텐, 2019_ 김근배作


이번 전시에서 김근배 조각가는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대리석 조형에 동으로 만든 푸른 고목나무를 더해 소망과 생동감을 나타낸다. 김근배 작가의 작품은 정형화 되지 않아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여정,35X13X47cm,대리석,동,2017_김근배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작품 속에 해학적이면서도 밝은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작가가 걸어왔던 길을 같이 걷는 것만 같다.


박선영 조각가는 본인의 소소한 일상을 종이작업으로 표현한다. 투명종이를 색실로 꿰매고 그 안에 색종이를 얇게 잘라 넣은 작품은 빛이 투과되어, 투명종이 안의 파스텔 톤의 색감이 리듬감 있게 보여진다.
 


행복한 삐릿삐릿,25X25X7cm, 혼합재료,2020_박선영作


박선영 조각가의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고 행복함이 가득 담겨있다
 

꽂을 피우다, 30X30X5cm, 혼합재료, 2018_ 박선영作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날 준비를 하는 2, 일상 속 행복했던 발자취를 담은 작품 30여점을 장은선갤러리에서 선보인다. 봄이 시작되려는 입춘에 작가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김근배 조각가와 박선영 조각가는 서울시립대학교 및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김근배 작가는 제11회 이탈리아 국제조각심포지움 난토 피에트라 2001”에서 1등상 수상. 장은선갤러리, 예술의 전당 외 18회의 개인전을 가지며, 다수의 아트페어 및 단체전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 시립조각회. 한국미술협회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고양이, 40X40cm, 혼합재료, 2019_ 박선영作


박선영 작가는 2001년 개천 미술대전 대상문화 관광부 장관상을 수상. 장은선갤러리 외 18회의 개인전을 가지며, 다수의 2인전과 단체전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작가는 한국미술협회, 한국조각가협회의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여정, 50X48X37cm, 스텐,대리석,2019_ 김근배作



■ 김근배 평론
 
유목과 정주, 바람과 땅의 소리를 듣는다
- 김근배의 조각에 깃든 슬픈 여정의 소리들
 
김종길(미술 평론가)
 
 타자의 자화상 - 순례자의 표상
허버트 리드는 인간이 자신의 형상(image)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심상(idea)'을 외부세계에 표출해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형상은 간단히 시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극히 부분적인 이미지를 얻을 뿐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시각이 한번에 한 방향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근배의 조각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인 자화상은 분명한 자신의 형상임에도, 즉 자신에 대한 심상을 외부세계에 표출해 보는 것이지만, 그 인물은 한 방향만을 보는 우리 모습과는 다르다. 뷜렌도르프의 얼굴이 익명화 혹은 투명화 되어 있듯 그의 조각도 우리의 시각 안에 있으나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익명화 투명화 된 인물의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인물상은 다양한 인물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하얀 배를 타고 유유히 현실을 벗어나 은밀하며 신령스런 어딘가로 떠나가는 순례자, 삼륜차에 온갖 잡동사니 살림살이를 싣고 싸구려 월세방을 전전하는 유학생, 배낭을 메고 낙하산을 타는 모험가, 봇짐 같은 물건들을 지게에 한 아름 짊어진 아버지, 찢겨지고 떨어져 나간 날개를 어깨에 나사로 고정한 퇴락한 천사, 몇 개의 보따리를 꾸린 채 길가의 어느 지점에서 잠시 비를 피하는 떠돌이, 그토록 버리고자 했던 자기 자신과 삶의 꾸러미들을 상찬하듯 차려 놓고 멍하니 우리를 응시하는 그 자신 등 작가 자신이 겪어야 했던 삶의 현장과 예술가적 이상-지향을 꿈꾸는 소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한 테두리에 안주하고픈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테두리에서 밀려나 월세집을 떠돌아야 했던 이태리의 유학생활이 녹아있다. 오래전 작가의 조상들이 정주문화를 받아들이고 정착지에 가계를 꾸려 갔던 것처럼 그 자신도 익숙해진 정주의 생활을 결국 낯선 땅에 여정을 푼 순간 여정의 보따리를 풀지 못하는 유목의 생활로 삶을 바꾸어야 했던 것이다.

인물의 유형은 몇 가지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이동하는 자’,‘떠나는 자이지만, 그가/그들이 가고 있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먼저 자동차와 배를 이용해 이삿짐을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다. 그는 두꺼운 정장을 차려입고 TV와 옷, 우산, 보따리, 물고기, , 숟가락, 가방 등을 들고 나섰다. 그는 이것들과 항상 함께 이동한다. 결코 놓거나 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다. 심한 바람에 그와 물건들이 바람 속으로 유영하듯 흩어질 때에도 모든 것은 자동차와 연결되어 있다. 어느 때는 삼륜차에 실어서 가고, 어느 때는 1인승 스포츠카에 실어서 가기도 한다. 부자여서가 아니라 서둘러서 옮겨야 하는 숨가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없을 때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거나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도심에 가방과 우산, 보따리와 숟가락, 책을 던져 놓고 자신도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늘 무겁고 답답한 정장을 입고 있다. 그가 자신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유학생활이 끝날 즈음이다. 이때 그는 증기선에 올라타 먼 여행을 떠나고 있다. 짐은 여행객처럼 각 객실에 나눠져 이동이 끝난 자리에서 쉼을 쉬는 듯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떠나는 자는 자신을 속박하던 삶의 보따리로부터 벗어나고 오로지 홀로이 길을 나서는 순례자가 된다. 가만히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침묵하고 있는 그는 작은 배에 의탁하여 먼 길을 가고 있다. 그와 동행하는 것은 코끼리이다. 그리고 그가 버리고 간, 놓아버린 물건들은 거대한 기둥위에 기념화 되어 서 있다. 집과 자동차, 책과 악기, 나무는 주인을 상실한 채, 등대(表式)처럼 솟아올라 있다. 그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집적되어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톤유쿡의 고뇌가 500년의 세월을 건너와 전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21세기의 현장에서 굳이 넷이라는 가상의 현실뿐만 아니라 실제의 현실에서도 유목적 삶을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
옛날 옛적 한 태국 왕이 신성한 영물로 간주되는 흰 코끼리(white elephant)'를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태국 왕은 흰 코끼리가 결코 선물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흰 코끼리가 태국 궁중 서열상 자신보다 더 높은 지존의신성 코끼리로 모셔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일 수도 쫓아 낼 수도 없는 코끼리는 왕의 골칫거리 였다. 이 때문에 영어 단어 white elepha 가볍게 넘실거리다 도착한 집, 떠오르는 향기
그와 동반하는 흰 코끼리는 서로를 판가름 할 수 없을 만큼 닮아 있는 그 자신이다. 그리고 그의 편재로 드러나는 새로운 조각물들이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 그것들은 그를 실어 나르는 도구들인데 작은 배, 낙엽, 자동차, 낙하산 등이 그것이다. 지극히 시간의 여정을 품고 있는 이 도구들은 그와 만나 모종의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의미를 확대하고 있다.

배는 그 혼자 타고 가는 배, 코끼리만 타고 가는 배가 있는데 이 배에는 노가 없다. 흐르는 물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다. 코끼리와 그가 함께 배에 오르는 경우 둘은 서로를 마주보지 않는다. 둘은 결코 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배 머리에 서 있는 것은(다가올 미래) 그 자신이며, 배가 지나간 자리(과거)는 코끼리가 서 있다. 이 배에는 세 개의 노가 있으며, 물결에 반사된 모습에는 배만 있다. 물에 비친 배는 아무도 있지 않다. 배는 배로서 홀로 흘러가고 있다. 이 둘의 관계는 때로 수평을 가기도 하는데, <시소>라는 작품은 둘의 관계를 극명하게 성찰한다. 빌딩 꼭대기에서 시소를 타고 있는 그와 코끼리, 코끼리는 그의 마음인 물고기를 코로 물고 있다. 여기에서 둘은 평행을 유지한다.

그가 없는 자리, 혹은 장소는 두 개의 오브제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나는 가방이며, 하나는 집이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 했던 것들은 이삿짐 보따리들인데, 차에 한가득 실고 다니던 잡동사니였다. 그러나 그의 가방은 잘 정돈된 보따리와 같다. 손잡이가 달리 가방 안에는 그동안 갖고 다니던 책과 우산, 숟가락과 TV와 옷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이제 어디든 이것만 들고 가면 끝이다. 짐을 꾸리고 풀어야 했던 삶이 순간 정리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가방은 늘 주인이 손을 내밀어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갈 때까지 귀퉁이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집은 여정의 끝이자 시작이다. 작은 배로 가볍게 넘실거리다 도착한 집은 적막하다. 도착한 그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잘 정돈된 책상과 탁자, 옷과 TV, 그리고 분신인 코끼리가 있을 뿐이다. 치지직 거리며 TV가 켜진 거실에서는 물 흘러가는 소리가 나는 듯 하다. 그가 방에서 꺼내어 좀 더 크게 제작한 TV에는 넘쳐나는 물고기 떼와 코끼리 떼로 터질 지경이기 때문이다. 흔적도 없이 다시 떠나간 그의 자리에는 물의 향기가 떠오르고 있을 뿐이다.
김근배의 조각은 가 되어 스스로 체험한 여정의 흔적, 상처, 기억, 그리고 깊은 성찰nt는 아예 골칫거리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김근배의 작품에 등장하는 코끼리도 자신의 내적 갈등이 심화될 때는 오히려 가볍움이 아니라 그러한 무거움으로 변할 수 있다. 8년여의 세월을 이민하고 돌아 온 그에게 이제는 유목 그 자체가 화두는 아닐 것이다. 그가 세월을 통해 깨달았듯이 세계는 그 자신과 무관하게 움직이며, 유목하게 만든다. 아주 먼 세월을 되돌아가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의 유품이 있는 현장에서 선보이게 될 그의 작품들의 의미는 그래서 그가 안고 가야할 작은 화두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작품은 세상과 만나는 통로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꿈꾸는 나비, 120X90cm, 혼합재료, 2019_박선영作


■ 박선영 평론
경기여성웹진 [그림 읽어주는 여자] 원고_20123월호 - 여경환
나의 소소한 일상 - 박선영 작가
 
도쿄의 미타카 집에 살 때에는 매일같이 근처에 폭탄이 떨어져서,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그러나 이 아이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지면 이 아이는 끝내 바다라는 걸 못 보고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쓰가루 평야 한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바다를 보는 것이 늦어, 열 살 무렵에 처음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그때의 흥분은 지금도 나의 가장 귀중한 추억 중의 하나이다. 이 아이에게도 한번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자이 오사무 수필바다중에서
 
 
강렬한 평범함에 대한 단상
꽤나 뜬금없는 일이다. 박선영의 종이 조각에서 왜 다자이 오사무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인간실격』 『만년등의 데카당스 문학으로 전후(戰後) 일본 문학계를 뒤흔들었고 실제로 그의 삶도 다섯 번의 자살 기도와 마약 중독으로 점철되어 결국 애인과의 동반 자살로 서른아홉의 짧은 삶을 마감했던 불멸의 청춘을 대표하는 이름, 다자이 오사무 말이다. 그의 수필집에는 놀랍게도 두 아이의 아빠로서 소박하고 다정다감했던 다자이 삶의 단편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매일 같이 폭탄이 떨어지고 방공호로 대피하는 것이 일상인 전쟁 중에서도 다섯 살 난 어린 딸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 그 마음을 배반하는 문학인으로서의 다자이는 송두리째 자신의 삶을 소설과 사회에 내던졌다. 전쟁과 패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섬세한 촉각을 가진 예술가가 현실과 예술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절규하고 쓰러지고 미치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폭탄과 아이, 바다와 평야, 추억과 흥분...수필집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난 주체할 수 없이 서글퍼졌던 것 같다.

아주 그럴듯한 일상을 접했을 때, 너무나 평범해서 특별한 행복을 만났을 때, 문득 궁금해진다. 일상의 불균일성을 넘어서 유지되는 항상성에 대하여,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들의 기복이 가져오는 삶의 미세한 균열들을 다시 메워낼 수 있는 그 힘에 대하여, 끊임도 없고 쉼도 없는 삶의 호흡과 함께 지속되는 그 운동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이다.

나는 내가 꿈꾸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곳에 아이와 남편과 집과 내가 꿈꾸는 것들이 있다. 그곳은 내 꿈의 세계이자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다.”- 박선영
 
장식적인이라는 수식어 앞의 당당함
박선영은 조각을 전공했지만 종이를 오리고 캔버스에 꿰매어 붙이는 종이 조각가다. 그녀의 작품은 먼저 강렬한 색채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얇은 미농지로 한번 감싸서 바느질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랑, 분홍, 파랑, 주황의 비비드한 형광색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리듬감은 보는 이를 들뜨게 만든다. 현란하지만 정교한 색채의 구사는 내가 입은 옷이 바로 나라는 식의 자의식을 표출하는 여자의 패션처럼 당당하다. 그 당당함이 주는 통쾌함은 단순히 색채 감각에 그치지 않는다. 나무호랑이 등의 명확한 소재성, 규방문화의 상징인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드러내는 시침선, 그리고 크리스탈 장식까지 박선영의 작업은 무엇보다 장식적이다.

하지만 장식성은 왜 아직도 본질이 아닌 효과나 여분이라는 선입관과 싸우면서 여전히 마이너리티에서 그 예술적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모더니즘 회화의 발전논리로 평면성을 설파했던 1940년대 이후 그린버그의 논의들은 수없이 비판받고 의심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의 조형성은 평면성, 추상성에서 얻어진다는 믿음은 일종의 권위가 되어 우리를 유령처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박선영의 작업은 오히려 그 장식성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강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장식성이야말로 그녀의 무기다.

게다가 박선영이 자신의 작업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바느질이야말로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지만 페미니즘에 의해 새롭게 발굴된 영역이다. 여성적인 것으로 일반화된 미의식에 대한 회고적 그리움이 아니라 촘촘한 시침선이 증명하듯 여성적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전면에 내세운, 바느질을 드러내는 바느질인 것이다. 다만 그 자의식은 거창한 목표나 대의에 봉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작품 안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것은 미적 리듬감으로 환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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