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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사진전 : 가려진 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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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이호영

  • 장소

    기억공장1945

  • 주소

    전남 순천시 장천2길 30-32 (장천동)

  • 기간

    2021-05-10 ~ 2021-06-04

  • 시간

    9:00 ~ 18:00 (휴관일 : 일요일)

  • 연락처

    050-1372-7705

  •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memory.1945/

  • 초대일시

  • 관람료

갤러리 가기

가려진 실존 #07, 2021,  500cmx160cm

사이존재Interfuit_ ‘가려진 실존‘
이호영

어느덧 초딩, 꼬맹이였던 나는 성장하여 사회인의 일원으로 생활하던 중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는 “얘야 이모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데 가봐야 할 것 같다” 라며 이모의 소식을 전해주셨다. 간간히 이모의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직접 인사를 드린 것은 대략 20년 정도 될 것이다. 어머니의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오래된 액자 속 주인인 이모께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가물가물한 이모의 희미한 얼굴을 떠올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 20년이란 시간은 이모와 나의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에 이모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간은 나와 이모, 서로의 존재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그렇지만 5인용 침상들이 놓여 있는 병실, 그중 끝자리에 누워 계신 할머니로부터 스치며 지나가듯 이모의 정취가 느껴졌다. 오랜 병원 생활에 그 흔한 염색도 못한 백발의 할머니가 나의 이모였던 것이다. 그의 표정, 미소, 말투, 몸짓, 행동 등으로부터 서서히 이모를 발견하게 됐다.
 
존재의 물음, 이것은 아주 근원적인 기원과도 맞닿아 있는 물음일 수 있다. 나는 존재 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비춰본다.
우리는 시간의 순환 속에 현존재로 드러난 순간만을 체험하며 경험하고 발견한다. 다시 보면, 존재는 실존을 통해 나타남을 증명한다. 존재의 물음은 실존에 관한 물음의 출발점이면서 비존재, 즉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달리 그 존재의 나타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의 나타남은 무엇인가? 이것은 존재 내의 끝없는 시간에 의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가려지기도 한다. 이것은 ‘나타남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실재로 시간은 인식 가능의 범주 내의 존재를 순간적으로 분산시켜 버린다. 사실 시간 속에 펼쳐진 실존,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인 나타남의 현상, 그 자체는 그 모든 순간들의 합체인 시간의 갇혀진 존재를 통해서 파악되거나 감지하기에 불가능하며 ‘알 수 없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간에 의해 갇혀진 나타남의 현상, 즉 ‘가려진 실존’은 인간의 인식 능력 밖에 있기에 있음과 없음, 실재와 비실재, 존재와 비존재, 생성과 소멸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알 수 없는 사이존재(Interfuit)인 “그곳에 존재 했었음”의 기조를 유지한 채 미발된 상태로 가려져 있다. 여기서의 ‘가려진 실존’은 있음과 없음의 사이,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서 없음은 있음을 품고 있으며, 있음은 없음을 담고 있는 일종의 중립적 태도로써 비어있지만 비어있지 않으며 스스로 내던져진 ‘진공상태(無ㅇ眞空)’의 시간을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첨예하게 얽혀 있는 존재의 사유 또는 존재의 방식들의 꽉 찬 모습을 갖추어 존재 증명을 드러내는 것과 흡사하다. 존재의 물음은 세계에 숨겨지고 발현됐지만 들키지 않았던 숨겨진 사건들을 파헤쳐서 비정립적으로 들춰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이존재의 ‘가려진 실존’을 가리킨다. 어쩌면 이것은 시간에 의해 담겨진 존재로써 이 세계에 드러났지만 “그곳에 존재 했었음”의 시간 속 존재로, 미발되어 가려진 실존에 대한 진실 된 물음일 것이다. 이렇듯 세계는 실존적 태도 속의 움직임을 걸러내어 간헐적으로 ‘시간 속의 환원’을 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작업인 ‘가려진 실존’에서의 존재의 물음은 시간에 의해 드러났지만 반대로 가려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존재 스스로가 드러내지 못한 것을 세상에 끄집어내어 실존을 재정립시켜 구현해내는 사진적 행위이다.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이 실존의 물음을 밝히기 위해 “그곳에 존재 했었음”의 사진의 존재론적 형식을 빌어서 보여주려고 한다. 여기서의 사진은 시간의 본래성을 넘어 가려진 실존의 시간의 비본래성을 맛보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이제 이미 사진에 담겨진 객관적 사실을 통해 존재의 물음을 던진 본 작업은 작가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나타남,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 장의 사진들을 겹겹이 중첩시켜 시간에 의해 ‘가려진 실존’을 포착한다.



가려진 실존 #03, 2021,  560cmx140cm 클로즈업2

본 작업은 2008년 또 다른 너의 존재, 2014년 규정과 무규정의 사이, 2017년 아르케Arche를 이은 4번째의 존재의 물음이다. 2008년 또 다른 너의 존재와 2014년 규정과 무규정은 가로, 세로 100cm 사이즈의 바트(사각틀)에서 페인트와 페인트를 충돌시켜 일정한 운동으로 섞임을 유도하여 근원적인 존재 흐름을 통해 생성과 소멸을 담아냈다. 이후 2017년 아르케Arche는 그 주제에서도 드러나듯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으로 산이나 들, 그리고 물가에서 연기를 뿌렸다. 이 연기 작업도 앞에서 페인트와 페인트가 서로 섞이고 퍼짐의 움직임을 포착하듯, 세계에 뿌려진 연기가 시간과 맞닿아 순간적으로 생성과 소멸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나타난 존재를 담았다. 이번 ‘가려진 실존’은 그것들 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존재태를 지적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가려진 실존’은 단순히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 했었음”의 실존의 물음을 펼치는 것이다.
 
본 작업은 지금까지 전국(서울 경기 강원 태백, 대구, 부산, 전라 순천 등)을 대상으로 사진들을 수집하고 있다. 약 80여 명을 접촉하여 현재 4-5명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에는 그 중 2명을 중심으로 사진과 영상 작업을 제작하고 조금이라도 본 작업으로 유도하기 위해 유리체험 등을 준비하였다. 유리체험은 본 작업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중첩시켜 드러나는 이미지를 보여주듯 유리를 5-10 장도 겹치거나 살짝 비틀고 또는 사이즈를 크게 작게 설치하여 관객이 현장에서 작품 속 이미지를 직접 현재의 모습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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