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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 / 들라크루아_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작성일2020/12/30 15:43
  • 조회 579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
들라크루아,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 1831

 
국어사전에서 ‘낭만’을 찾아보면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라고 나온다. 헛된 꿈만 꾼다는 인상이 강해 한때는 낭만이라는 단어의 말랑말랑한 느낌조차 괜히 싫어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하루하루가 메말라가고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낭만’이.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가인 들라크루아는 역사화에서조차 개인적, 문학적인 상상력이 빚어낸 다른 세계에 대한 환상을 짙게 묻혔다. 그는 당대의 프랑스 현실보다는 고대나 중세와 같은 과거, 신화와 문학과 같은 허구, 아프리카나 이슬람 사회와 같은 이국에 매혹되어 있었다. 이런 낭만주의적인 관심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바로크적인 구성, 거친 붓 자국, 강렬하게 병치된 색채 등의 기법을 도입했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감성과 개성, 상상력으로 승화시키고, 강렬한 색채와 명암의 대비를 이용하여 신고전주의 회화에 정면으로 도전한 화가였다. 회화 기법에 대담한 혁신을 가져온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고, 현대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대표작들 중 유일하게 당대 프랑스의 현실을 담은 역사화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부제는 ‘1830년 7월 28일’로, 왕정복고에 반대하여 봉기한 시민들이 3일간의 투쟁 끝에 결국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고 루이 필리프를 국왕으로 맞이한 ‘7월 혁명’을 주제로 했다. 그림에서 시민군을 이끄는 이는 상징적으로 표현된 자유의 여신으로서 낭만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현실에서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의 진리를 대변한다. 사실과 비유의 혼합으로 이 작품은 7월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유, 추상적인 혁명의 이미지, 동시대의 소재를 이용한 서사시가 되었다.




<미솔롱기의 폐허 위에 선 그리스>, 들라크루아, 1826   /    <알제의 여인들>, 들라크루아, 1834


그 이후에도 들라크루아는 여인을 비유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한 역사화를 그렸는데, 그리스 독립 전쟁을 주제로 한 <미솔롱기 폐허의 그리스>는 아예 중심 사건마저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돌더미 위의 여성은 그리스 자체를 나타낸다. 미솔롱기는 그리스 남부의 도시로 터키에 맞서 1년 정도 버티다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해지자 마지막 생존자들이 광산을 폭파시켜 자멸한 곳이다. 폐허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여인은 비록 멸망했지만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 그리스인들의 고결한 정신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또한, 현실과 먼 것일수록 매력을 느낀 낭만주의자들에게 동방의 이슬람 국가는 최고의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는 소재 중 하나였다. 이는 모로코를 여행한 후 동방에 환상에 빠져있던 들라크루아에게도 마찬가지였으며, 여성들만의 공간인 할렘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채워 그린 <알제의 여인들>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실내 장식도 화려하지만 그보다 더 화려한 건 주인공 여성들이다. 실제로는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생활공간인 할렘이 그의 상상력을 통해 화려한 향락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 생각에 젖은 그림이다.
 
이런 그가 당대에는 역사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가장 사람들의 기억에 많이 남은 작품이 유일한 당시의 현실을 담은 그림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날것 그대로의 진실보다 감상이 가미된, 호소력 짙은 작품에 매료되기도 한다. 때로는 현실보다 낭만이 더욱 큰 울림을 준다.



(게재된 글은 백영주의 '세상을 읽어내는 화가들의 수다'에 수록되었으며 저작권은 백영주에게 있고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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