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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지만
  • 작성일2021/03/23 09:49
  • 조회 698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그 무엇보다 가장 많이 자주 변하는 건 인간의 마음이다. 바람처럼 흔들리는 건 개인의 마음만 아니라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변하는 집단의 마음도 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지적인 활동, 글을 쓰고, 말을 하는 행위도 바뀐다.

한국 역사와 유물 중에는 ‘낙랑’도 이렇게 말이 바뀌는 주대상이었다.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은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 중 가장 오래 남아 있던 군현이었으니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평양에 설치된 낙랑군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 역시 찬밥 대우를 받았다.

1931년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를 포함한 조선고적연구회는 대동강 남안 석암리에서 동남향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을 이용한 고분을 발견한다. ‘남정리’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남정리 제116호분’이라고 했는데 훗날 ‘그림이 그려진 대바구니’[채협(彩?)]가 발견됐다고 해서 채협총(彩?塚)이라고 불리게 됐다.
‘채화칠협’, 낙랑, 3세기, 39×18×17㎝.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 ▲ ‘채화칠협’, 낙랑, 3세기, 39×18×17㎝.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
고분은 전실과 현실(玄室)로 이뤄진 방 두 개짜리 이실(二室)묘였으며, 안에서는 3기의 목관이 나왔다. 묘실로 들어가는 입구인 연도에서 전돌이 출토돼 3세기경에 조성된 무덤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나온 유물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채화칠협, 즉 그림이 그려진 대바구니였다. 질이 좋은 대나무 겉껍질을 가늘고 곱게 잘라 만든 폭 39㎝에 불과한 뚜껑 있는 바구니다. 사람들이 이 바구니를 주목한 것은 바구니 전체를 검게 칠하고,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으로 무늬를, 뚜껑이 덮이는 윗부분에는 붉은색, 노란색, 녹색, 다갈색 등 다채로운 색으로 사람을 그렸기 때문이다. 가로로 긴 면에는 10명씩, 짧은 면에는 5명씩 모두 30명의 인물이, 뚜껑을 덮으면 밖으로 드러나는 아랫부분 모서리에는 각각 1명, 모두 8명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물 옆에 일일이 인명을 썼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전한(前漢)의 은일 거사인 정자진(鄭子眞)을 비롯해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살았다는 백이(伯夷), 효자 정란(丁蘭)과 위탕(魏湯) 등이 있다. 이들은 한나라의 화상석이나 벽화에도 종종 나오는 고사나 전설상의 인물들이다. 이전의 중국미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구체적인 인물 이야기가 한대부터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주제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인 이야기나 역사상의 고사, 서왕모와 같은 도교의 신선들이다.
‘채화칠협’ 부분,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 ▲ ‘채화칠협’ 부분,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
한나라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나라답게 미술을 통해 역사의식과 충효사상을 보급하려 했다. 하지만 중국식 옷을 입은 인물들은 옷 색깔과 자세는 달라도 한자로 쓰인 이름이 아니면 누가 누군지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인물을 그리기는 했지만, 개인의 개성이나 초상성은 전혀 없는 셈이다. 낙랑의 고분에서 발견된 바구니에 그려진 인물들은 단순히 사람 그림이 아니라 충효의 이념을 전달하는 매개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낙랑에서 발견된 바구니를 그저 중국미술이라고만 보면 될까? 낙랑은 한국사와 아무 관계가 없을까?

글로벌시대 한국에는 무수한 외국 물품이 수입됐고 사용되고 있다. 만일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현대의 외국 물품들을 발굴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발견되는 물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흔히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본다지만 때로는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오늘을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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