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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의 선물, 오롯한 ‘나’… DNA로 흩뿌린 산수화
  • 작성일2021/07/01 10:06
  • 조회 334
 

이이남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

긴 자가격리 시간 속 ‘정체성’ 깊은 고민
유전자 정보 추출해 디지털 예술로 창조
곳곳 거울, 작품과 하나 되는 착시 경험도
이이남 작가는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를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고민한 디지털 산수화 신작들을 펼쳤다. 다양한 세대의 DNA 데이터로 재해석한 ‘인간, 자연, 순환’. 사비나미술관 제공 ▲ 이이남 작가는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를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고민한 디지털 산수화 신작들을 펼쳤다. 다양한 세대의 DNA 데이터로 재해석한 ‘인간, 자연, 순환’.
사비나미술관 제공
미디어 작가 이이남은 1년 사이 총 12주를 자가격리 상태로 지냈다. 전시 일정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와 올 초 중국을 두 차례 방문했는데 매번 코로나19 해외 입국자 방역수칙에 따라 중국에서 3주, 한국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게다가 확진자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2주가 더해졌다. 한 번도 겪기 힘든 상황을 여러 차례 반복했으니 억울할 만도 한데 예술가에겐 이런 불편한 경험도 독(毒)이 아닌 득(得)인 모양이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에서 이이남은 불가피하게 고립된 환경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뿌리와 본질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한 결과를 담은 디지털 산수화 신작들을 펼쳤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코로나의 선물”이라며 웃었다.

 
1997년부터 미디어아트 작업을 한 이이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고흐의 ‘자화상’,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동서양 고전명화를 입체적으로 움직이게 재해석한 디지털 작품으로 유명하다. 독특한 기법으로 재창조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2019년 영국 테이트 모던 백남준 회고전, 2020년 벨기에 브뤼셀 한국대사관 등에서 소개돼 주목받았다.

그동안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실험해 온 작가는 인간을 비롯해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와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가 담긴 DNA에 주목했다. 서울대 생명과학연구소에서 추출한 자신의 DNA 데이터를 고전회화와 결합해 제작한 디지털 영상·설치 작품 21점을 선보였다. DNA 염기서열을 구성하는 작은 알파벳들이 쌓였다가 흩어지면 곽희의 ‘조춘도’ 등 고전 산수화가 펼쳐졌다가 사라진다.
이이남 작가는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를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고민한 디지털 산수화 신작들을 펼쳤다. ‘DNA 산수’는 영상 맞은편에 거울을 배치해 관람객이 작품 일부가 되도록 연출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 이이남 작가는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를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고민한 디지털 산수화 신작들을 펼쳤다. ‘DNA 산수’는 영상 맞은편에 거울을 배치해 관람객이 작품 일부가 되도록 연출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이이남 작가는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를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고민한 디지털 산수화 신작들을 펼쳤다. ‘분열하는 인류’는 ‘실’(實) 자에 꽂힌 화살 아래로 글자가 가루처럼 흩어져 떨어진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 이이남 작가는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다’를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고민한 디지털 산수화 신작들을 펼쳤다. ‘분열하는 인류’는 ‘실’(實) 자에 꽂힌 화살 아래로 글자가 가루처럼 흩어져 떨어진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전시 주제는 중국 방문 때 알게 된 당나라 시인 사공도의 시학서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작가는 “‘형상 밖으로 훌쩍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손을 쥔다’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면서 “자가격리 기간에 고민했던 정체성의 문제와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펼쳐진 고서들이 줄에 매달려 위아래로 움직이면 바닥에 놓인 수조에 책 속 글자들이 비치게 만든 설치 작품의 제목도 이 시구에서 따왔다.

동양회화의 핵심 개념인 ‘시화일률’(詩畵一律·시와 그림은 다르지 않다) 사상을 매개로 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곳곳에 거울을 배치해 시와 그림의 경계가 없듯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지우고, 관람객이 작품과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착시를 유발한다.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화살이 마주한 상황을 연출한 작품 ‘분열하는 인류’는 거울에 투영된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화살의 끝이 나를 향하는지, 아니면 내가 화살을 쏘는 것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책 5300권에서 얻은 문자데이터들을 폭포수처럼 쏟아지게 만든 6.8m 높이의 미디어아트 ‘시(詩)가 된 폭포’는 시각을 압도한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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