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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사각형… 단색이지만 다색… 평면이지만 입체
  • 작성일2021/05/27 14:10
  • 조회 169

‘단색화 거장’ 정상화 화백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흑색과 백색 단색화 작품 앞에 선 정상화 화백. 한 가지 색처럼 보이지만 작품 안에 각각 다양한 흑색과 흰색이 겹쳐 있다. 연합뉴스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흑색과 백색 단색화 작품 앞에 선 정상화 화백. 한 가지 색처럼 보이지만 작품 안에 각각 다양한 흑색과 흰색이 겹쳐 있다.
연합뉴스


“똑같은 것을 계속하는 건 용서 못해요. 변화해야 합니다.”

89세 노화가의 눈빛은 형형했고, 어조는 단호했다. 독창적인 격자 구조 화면으로 한국 단색조 추상의 한 획을 그은 정상화 화백은 남들이 넘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대가임에도 여전히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했다. “작품 속에 나의 핏줄이 있고, 심장 박동이 있다”는 그의 말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끊임없는 수행으로 한평생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값진 자부심일 것이다.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 화백의 60년 화업을 돌아보는 대규모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오는 9월 26일까지 펼쳐진다. 전시 제목은 ‘정상화’.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을 정도로, 이름만으로 하나의 장르가 된 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만나는 자리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 신입생이던 1953년에 그린 ‘자화상’을 시작으로 전위적인 표현주의적 추상 실험을 거쳐 1970년대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그리고 1990년대 격자화의 완성과 심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평면 작업의 지평을 넓혀 온 과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정상화 화백. 사진 이만홍

▲ 정상화 화백. 사진 이만홍


학창 시절 정물화나 인물 크로키 같은 구상 회화를 주로 그렸던 정상화는 졸업 후 한국현대미술가협회, 악뛰엘 등의 단체에 참여하며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주의 추상에 몰두했다. 전후 폐허가 된 현실에 대한 충격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광기처럼 분출된 시기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 화백은 “남이 못 하는 걸 하려고 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1967년 가족을 두고 홀로 프랑스 파리로 떠난 이유도 “내 눈으로 직접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해외 체류는 1992년 영구 귀국 때까지 일본 고베와 파리 등에서 25년간 이어졌다.

작품 65-B, 1965, 캔버스에 유채, 162×130.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 작품 65-B, 1965, 캔버스에 유채, 162×130.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격자형 화면 구조는 수많은 추상 실험 끝에 찾은 그만의 독창적인 조형 기법이다. 캔버스 윗면에 고령토를 3~5㎜ 두께로 발라 건조시킨 다음 뒷면에 미리 그어 둔 선에 맞춰 캔버스를 접으면 표면에 균열이 생기면서 크고 작은 사각형들이 드러난다. 사각형에서 고령토를 칼이나 조각 도구로 뜯어낸 뒤 물감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화면에 입체적인 공간을 구현한다.

정 화백은 “화가들이 붓으로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처럼 나는 드러내고, 메우고, 다시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며 “화면에 설득력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작업을 멈춘다”고 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반년에서 1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조수를 한 번도 두지 않고, 혼자서 작업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뜯어내고, 메우는 반복적인 행위를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수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평면이되 ‘입체적인 평면’이고, 단색이지만 ‘다색의 단색’이다. 그는 “백색 단색화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흰색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와 프로타주(탁본 기법) 등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발표 작품들도 소개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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