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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개인전 《명주실로 그린 사유의 세계》

KIM YEONGOK Solo Exhibition

  • 작가

    김영옥

  • 장소

    비오케이아트센터

  • 주소

    세종특별자치시 국책연구원3로 12 (반곡동)

  • 기간

    2022-10-11 ~ 2022-10-16

  • 시간

    10:00 ~ 19: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연락처

  • 홈페이지

    http://www.bokartcenter.co.kr/

  • 초대일시

  • 관람료

갤러리 가기
<작가 약력>
김영옥 (소화영옥),( Kim yeongok , Sohaw-yeongok ),金榮玉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 


개인전6회 단체전 및 아트페어140여회
2022 내면 풍경,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구축한 (세종, BOK 아트센터갤러리)
2021 퍼블릭갤러리 기획 100호 2인 초대전 (서울, 콘고디온빌딩 지하1층) 
2021 런던 FOCUS → FOCUS ABT FAIR (런던, 사치갤러리)
2020 작가미술장터 가평아트페어 (설미재 미술관 주관)
2020 남송미술관기획 신진작가 5인초대전 (가평, 남송미술관)
2020 아시아프 히든아티스트선정( 서울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19 서울아트페어(서울 ,코엑스)
2019 Hongkong Affordable 아트페어 
2019 Work#1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 회화과  동문전 (서울한전아트센터1관) 2018  아트마이닝 –100인(서울DDP살림터2층)
2017 모던아트쇼 아트마이닝 당선 공모전(서울 한가람미술관) 2008~2022 대전미술제(대전시립미술관,대전예술가의집)
2012 독일카스티시 초청 한국미술의 균형과 다양성전(독일) 2011 한중 현대 미술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전관 (경희관 분관)

작품소장: 해외(미국,홍콩) 국내 (주)MBP,개인소장외 한국미술협회, 대전가톨릭미술가회
Opengallery,saatchiart, Singulart, The artling 제휴작가 lllus20@naver.com 010-8020-2827


김영옥의 회화 
내면 풍경,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구축한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실을 붙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절제와 자기반성적 성찰, 느림 그리고 빛의 잔상을 기하 학적 추상 이미지로 표상한다...실을 붙이는 행위는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반복된 동작을 통해 자기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붙여진 실 위에 쌓인 물감 층이 삶이 되었다...실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자기 내면의 추억을, 기억을, 욕망을, 관계의 감정을 구축한다. (작가 노트) 
현대미술을 확장 시킨 계기가 여럿 있지만, 그 중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오브제의 도입을 들 수 있다. 형식적이고 조형적인 요소를 위해 오브제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브제 의 도입으로 오브제가 원래 속해 있었던 현실성과 일상성을 담보하려는 기획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이 있는 그림은 물론이거니와 비록 추상적인 그림에서마저도 오브제는 자신의 작업을 현실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고 방법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게 작가들이 이런저런 오브제를 자신의 작업에 도입하지만, 작가 김영옥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실(명주실)을 도입한다.

왜 실인가. 실에는 무슨 각별한 의미라도 있는 것인가. 아마도 이러한 실의 의미를 밝히는 일이 곧 작가의 작업을 읽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에 면면히 흐르는 사실상의 주제 의식을 추정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꼭 그렇지도 않지 만, 예로부터 실은 여성 주체의 가사며 생활사와 관련이 깊고(예컨대 바느질과 뜨개질), 그 런 만큼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반영한다. 한편으로 실은 가늘고 길다. 그래서 시간을 상징 하고  기다림(작가의  표현으로  치자면  느린  그러므로  기다리는  삶)을  상징한다.  민속학적인 경우로 치자면 무병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은 관계를 상징한다.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피하고 싶은 관계를 상징하고, 술술 풀 리는  실타래가  좋은  관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실은  연결을  상징한다.  흔히  인연을  연결된 실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존재론적인 경우로 치자면 삶과 죽음의 연결을, 이승과 내세의 연 결을,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삶(뫼비우스의 띠?)을 상징한다. 이처럼 실에는 생활 사에서 유래한 의미부터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삶으로 나타난 존재론적인 의미에 이르기까 지 문명사적인 그리고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오브 제로서 실을 도입한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의미 부여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화면에 실을 붙이는 행위에는 반복 수행을 통해 자기를 치유하는 기능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반복 수행은 수행의 한 방법론으로서, 무슨 일이든 반복하다 보면 도가 통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반복 수행을 통해 자기에 몰두하고(자기_타자와 투명하게 대면하고), 동시에 자기를 잊는(자기_타자 그러므로 어쩌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몰입을  통한  치유는  비록  작가의  개인적인  작업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다만 그 경우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상처와 더불어 산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보편성을 얻고 공감을 얻는다.

의미가 그렇다면 형식은 어떤가. 작가는 화면 위에 실을 붙이고, 그 위에 채색을 입힌다. 그 렇게 기하학적 형태가 강한 색면추상을 예시해준다. 밝은 면과 상대적으로 어두운 면이 적 절하게 어우러진 화면이 감각적 쾌감을 준다. 여기서 촘촘하게 덧붙여진 실이 결을 떠올리 게 하는데, 아마도 작가 자신의 내면에 연유한 결, 그러므로 마음의 결을 표상할 것이다. 마 음에 울리는 소리, 그러므로 내면의 소리를 표상한다고 해도 좋다. 자기 내면에 내적 질서 의 성소를 구축하려는 기획이라고 해도 좋다(실제로도 예로부터 기하학적 형태는 질서를 표상한다).

그렇게 하나의 화면 속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크고 작은 면이 어우러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면은 흡사 창문처럼 보이고, 부드럽고 온건한 빛의 기운이 흘러드는 문틈처럼도 보인 다. 아마도 실제로 관찰한 빛, 그러므로 물질적인 빛을 재현한 것이라기보다는 내면의 빛의 기운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희미한 기억으로 남은 빛의 잔상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기억 으로 남은? 주지하다시피 창문은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며 관문을 상징한다. 아마도 작가는 그 통로를 통해 빛의 질감으로 자신을 감싸던 유년의 기억을 되불러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기 치유와 정화를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서 색 면추상은 자기 내면에 질서의 집을 지으려는 기획으로 보이고, 따스한 빛의 질감으로 남은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는 계기로 보인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에서 색면추상은 엄격하면서도 따스한, 부드럽고 온건한 느낌이다. 그리 고 작가의 작업은 근작에서 좀 더 유기적인 형태로 변신을 꾀하는데, 화면 속에 산과 같은, 능선과 같은 풍경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를 어필시키는 것이 그렇다. 기하학적인 형태로부터  유기적인  형태로,  색면추상으로부터  풍경화로의  변신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이처럼 소재가 달라진 만큼 바탕화면을 이루는 실의 용법 또한 다르다. 이번에는 일정한 크기로 자 른 토막 실을 중첩해 산을 만들고 풍경을 일구는데, 마치 먹그림에서의 준을, 필을, 획을 떠 올리게 된다. 빛의 질감을 형용하던 마음의 결이 풍경의 결로 옮아왔다고 해야 할까. 이처럼 모든 존재에는 결이 있다. 마음에도 결이 있고, 풍경에도 결이 있다. 질 들뢰즈는 인 간의 의식에도 결(주름)이 있다고 했다. 결은 접혀 있어서 접힌 부분은 잘 안 보인다. 아마도 상처가 깃든 자리라고 해도 좋다. 그러므로 존재(그리고 풍경)의 결은 동시에 존재(풍경) 의 상처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참조할 뿐, 색면추상과 마찬가지의 기억을 더듬어 그린 풍경이라고 해도 좋고, 이상향 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내면 풍경을 그린 것일 터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서 색면추상 과 풍경이,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인 형태가 사로 구별되면서 합치된다. 

작가는 이 일련의 그림들을 《Exposed in light_code of life》라고 부른다. 삶의 코드를 빛으로 드러낸다는 의미다. 빛의 질감을 매개로, 그리고 여기에 실의 질료를 매만지는 손길을 통해 자기 내면의 추억을, 기억을, 욕망을, 관계의 감정을, 그러므로 삶을 표출한 그림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실제 하는 창문이며 현실 속 풍경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다만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구축한 내면 풍경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치유며 정화를 실현한 그림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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