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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SARUBIA Outreach & Support)
박효빈 《누구의 것도 되고 누구의 것도 아닌》

Hyo Bin Park solo exhibition

  • 작가

    박효빈

  • 장소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6길 4 (창성동)

  • 기간

    2022-05-04 ~ 2022-06-03

  • 시간

    12:00 ~ 19:00 (휴관일 : 월요일, 6.1 (지방선거일) / 일: 오후 12시-6시)

  • 연락처

    02-733-0440

  • 홈페이지

    http://www.sarubia.org

  • 초대일시

  • 관람료

갤러리 가기
전시서문
 
누구의 것도 되고 누구의 것도 아닌
이성휘(큐레이터, 하이트컬렉션)
 

근래 박효빈은 그가 머물렀던 지역의 공간, 특히 산이나 숲과 같은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이나 그런 거대한 자연 풍광을 바라봄으로써 차분하게 침잠해 들어가는 감정을 풍경화 연작으로 그려왔다. 특히 작가가 방문했던 이탈리아 돌로미티산의 풍광으로부터 받은 위로의 감정을 담아낸 <그 밖의 것> 연작(2018)은 실제 자연 앞에서 사생을 통해 담아낸 작업들인데 단순히 풍경을 캔버스 위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대자연을 마주하면서 그 풍경으로부터 받은 위로, 그 순간에 깨닫게 되는 삶의 이면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작가는 자신에게 풍경은 몸을 감싸 안아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치유의 풍경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따라서 그는 자신이 그리는 풍경에 위로와 치유의 감정까지 담아내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젤 위에서 그려지는 대체로 무난한 크기의 캔버스 위에서는 풍경이 바라보는 대상으로 표현되는데 그쳐왔던 바, 이번 개인전 《누구의 것도 되고 누구의 것도 아닌》(2022)에서 박효빈은 그가 체험한 몸을 감싸주는 풍경의 느낌, 숲 안으로 들어온 몸의 느낌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회화를 시도하였다. 이와 함께, 풍경 속에서의 찰나의 발견과 깨달음,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기묘한 감정을 맞닥뜨렸을 때의 심리적 동요에 좀 더 집중하여 그린 작은 캔버스 그림들을 동시에 선보인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환대하는 거대한 힐러로서의 숲과 그것을 형성하는 다양한 구성원들, 또 그들이 선사해 주는 장면의 이면에서 도사리고 있는 삶의 아이러니와 기묘한 감정들까지 작가는 표현하고자 한다.
 

그림 속으로

이번 개인전의 중심을 차지하는 작품은 <Promenade>(2022)이라고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이 자연 앞에서 그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느껴온 풍경이 감싸주는 듯한 신체적 감각을 회화로도 표현하는 것을 우선하였다. 그리하여 세로 길이가 사람의 키를 넘어서며 좌우 너비도 공간의 한 벽을 가득 채워 관람자가 움직이면서 그림을 보게끔 크기를 결정했으며, 마치 그 안으로 당장이라도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을 구상하였다. 이 풍경은 특정 장소나 장면을 다룬 것이 아니라 풍경을 그려오면서 작가가 익숙해진 숲과 공원, 길, 나무, 덤불 등을 종합해 놓은 장면이다. 그간 박효빈은 풍경의 현장에서 과슈로 간략히 스케치를 하고, 이 스케치를 토대로 스튜디오에서 캔버스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스튜디오에서는 풍경을 마주했던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 감각이 시차를 두고 다시 옮겨지는 순간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 이번 신작은 작가의 이전 작업들을 통해서 한두 번 봄직한 기분이 드는 장면들이지만 실제로는 서울의 스튜디오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작가의 기억, 감각, 신체적 움직임이 종합적으로 만들어낸,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인 것이다. 우선 이 그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구체적으로는 좌측의 울창한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하여 시원하게 펼쳐 있는 공원, 그리고 중앙에는 호수가 보이는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 그리고 우측의 두 갈래로 나뉘는 산책길 풍경이다. 풍경을 마주할 때 우리는 원경, 중경, 근경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거리에 따른 풍경의 차이를 각 장면마다 비중을 달리하여 표현하였다. 좌측의 침엽수림은 관람자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울창한 침엽수림은 숲의 깊이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 스크린처럼 다가온다. 나무 옆으로 서 있는 인물이 그 규모를 가늠케 해줄 뿐이다. 한편, 화면 중앙에서는 상대적으로 여러 가지 등장인물, 동물들에 의해서 간접적이지만 가능성 있는 사건이나 뉘앙스가 감지된다. 화면을 상하로 가득 채운 나뭇가지들과 나뭇잎, 그리고 덤불들 사이로 고양이의 꼬리, 검은 까마귀들, 하얀 백조들, 그리고 휴식을 취하거나 산보 중인 인물들이 관찰된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공원에 한가로이 누워 있는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이 풍경은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호수에서는 싸움이 벌어진 듯 백조 몇 마리가 물 위에서 첨벙거리고 있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나뭇가지에 앉아 이들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까마귀는 상서로운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이 중앙 장면에서 나무들과 덤불, 그리고 이것들의 울창한 가지나 흐드러진 꽃잎과 이파리는 풍경의 이면을 의심케 하는 의뭉스러운 요소들이다. 작가는 이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면서도 먼발치에서 건너보게끔 경계를 그어 놓았다. 그러나 우측 풍경으로 가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길을 택해 나서야 할 것 같은, 두 갈래로 갈라진 산책길의 진입로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중앙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나무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는 두 갈래의 길. 하늘을 가리는 숱한 나뭇가지들은 어느 나무에서부터 뻗어 나왔는지 알 수가 없을 만큼 엉켜 보인다. 작가는 이 장면에 대해 설명할 때, 실제 숲길을 산책할 때 걸어가는 중인 우리가 머리 위의 나뭇가지들의 형상을 논리적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쉭쉭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나무들은 끊임없이 좌우에서 우리를 둘러싸는데, 이들의 나뭇가지는 머리 위로 성큼 다가왔다가 몇 걸음 걷자마자 바로 뒤로 가버리고, 연달아 새로운 나뭇가지가 다가왔다가 뒤로 가기를 반복한다. 이때의 동세를 담아내고자 작가는 나뭇가지들을 엉켜 보일 정도로 흐드러진 느낌으로 표현하였다. 이 장면은 근경에 우뚝 선 나무의 모습이나 산책로의 나뭇가지의 형상을 강조한 점에서 호크니의 <월드게이트 숲>(2006) 연작을 연상케 한다. 호크니는 그랜드캐니언 등 그가 마주한 자연 풍광을 담은 풍경화를 많이 제작하였는데, 특히 영국 요크셔 월드게이트 숲을 그린 그림들에서는 장소(place)에 대한 경험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요크셔 지방의 풍광을 사생을 통해서 거대한 규모의 회화로 담아내면서, 이젤 회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면, 거대한 이미지는 그 앞에 서 있는 이들을 올려다보게 만든다는 점을 활용하였다. 특히 거대한 나무를 근경에 두어 올려다보게 만들면서 동시에 구부러지고 멀어지는 길을 통해 원근감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연의 무한성을 구현하고, 보는 이를 그 한가운데 위치하게 하였다. 이는 박효빈의 그림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그가 그린 산책길은 호크니의 그림에 비하면 덜 극적인 느낌으로 다소 차분한 편이지만, 근경에 우뚝 서 있는 나무로부터 멀어지는 길의 끝이 살짝 휘어져서 끝을 알 수 없게끔 하여 모호함을 유발시켰다. 근경의 진흙길만큼이나 의뭉스러운 화면 속 소실점이다.
 

누구의 것

박효빈은 주로 풍경을 그린 화가로 인식되지만 풍경화뿐만 아니라 일상과 일상에 깃든 감정을 포착하는 정물화도 많이 그린 적이 있다. 그의 정물화는 담백하고 단촐하게 사물의 모습을 포착한 그림인데 작가에 의하면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은 마음으로 파악된 특정한 이미지였다. 박효빈은 “정물은 각 사물마다 개인의 기억과 의미를 품고 있어서 상징에 가깝다. 단순한 미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건조한 물건이 아니라, 기억을 머금고 의미를 끌어안은 어떤 것”이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풍경 또한 그에게는 매일 만나는 일상의 가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 혹은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공상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사진에 기대지 않고 사생을 통해 풍경을 담는데 사생에는 그 순간 작가가 포착해낸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에 훨씬 더 감성적인 풍경이 된다. 궁극적으로는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어떤 것을 향하여 작가가 마음을 쏟게 되고 외부를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된다. 작가가 곧잘 그리곤 하는 까마귀는 외부를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여 다소간 고독을 즐기는 성향의 캐릭터를 반영하는 듯하다. 박효빈은 자신이 까마귀를 설명하면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 등장하는 까마귀를 언급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까마귀에 대해서 흔히 길조냐 흉조냐 정도의 이분법적인 의미를 투영하곤 하지만, 헤세 소설에서 까마귀는 아웃사이더이기도 하고, 인간 문명 세계로 들어온 인간의 친구이자 동시에 멸시하는 자, 미지의 장소에서 온 전령이자 마술사, 예술가 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인간을 가까이에서 또는 몇 걸음 뒤, 머리 위에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관조적인 존재로서 박효빈 역시 자신의 그림에 까마귀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곤 한다. 무심한 인간에 의해서 치명적인 희생을 당할 수 있는 존재로도 등장시킨다. 까마귀뿐만 아니라 박효빈은 산, 나무, 호수, 꽃, 바람, 구름, 어둠, 별 등 무수한 ‘것’들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위대함, 사랑, 위로, 아름다움, 구원, 고독, 지혜 등 무수한 감정과 의미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대칭 구도나 반사 장면은 마치 우주 만물과 추상적인 개념들이 캔버스 화면을 거울삼아 바라보고, 또는 필터 삼아 들숨과 날숨으로 드나드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순간적으로 이 삼라만상은 잠시 누구의 것이 되었다가 또 바로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유령처럼 캔버스 화면을 지나가는 희미한 선묘와 같은 존재들이다.
 
자신의 그림이 향하는 것들을 ‘그 밖의 것들’이라고 칭하는 박효빈에게 회화는 쉽사리 ‘나의 것’으로 붙들리지 않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회화의 숲 안으로 들어와 있고, 그의 회화는 오늘도 의뭉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호수이자 공원이자 산이다. 작가는 두 갈래로 갈라진 오솔길 중 이미 하나의 선택을 하였으며, 다만 그 길의 끝이 구부러져 있음에 우리는 가보지 않고는 도저히 미리 알 길이 없는 끝인 것이다. 밤 산책길에 마주친 고양이의 눈에서 그 순간 뿜어져 나오는 섬광처럼 회화는 우연한 순간에는 기묘하면서도 흥분되는 것이 되고, 한동안은 캔버스라도 뚫고 숨어버려야 할 것 같은 구멍이기도 하다. 그림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없는 것. 회화는 그렇게 들숨과 날숨으로 캔버스 표면을 드나드는 유령이다.



Promenade, 2022, oil on juta scozia, 220×1000cm


Promenade, 2022, oil on juta scozia, 220×1000cm (detail)



Promenade, 2022, oil on juta scozia, 220×1000cm (detail)



Promenade, 2022, oil on juta scozia, 220×1000cm (detail)


(좌) 시선, 2022, oil on canvas, 90.5×72.4cm
(우) 낯선 풍경, 2022, oil on canvas, 45.2×37.8cm


(좌) 밤의 비밀, 2022, oil on canvas, 27×21.7cm 
(우) 버려진 의자, 2022, oil on canvas, 72.4×9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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