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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일등 객실 안의 침묵
  • 작성일2020/02/12 14:32
  • 조회 460
오거스터스 에그, ‘길동무’, 1862년 (65.3×78.7㎝, 버밍햄 미술관, 영국 버밍햄)
▲ 오거스터스 에그, ‘길동무’, 1862년
(65.3×78.7㎝, 버밍햄 미술관, 영국 버밍햄)


1830년 리버풀~맨체스터 간 철도 노선이 개통되면서 19세기를 휩쓴 철도 건설 열풍이 시작됐다. 마차보다 정확하고 편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기차는 여행의 신세계를 열었다. 찰스 디킨스는 1851년 파리로 기차 여행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는 방금 또 다른 역을 지나갔다.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

오거스터스 에그는 일등 객실에 두 젊은 여성이 앉아 있는 장면을 그렸다. 두 사람은 거울에 비친 이미지처럼 대칭을 이루고 있다. 똑같이 연회색 공단 드레스를 입고, 똑같이 목에 검정 초커를 했다. 무릎에 올려놓은 빨간 깃털 장식이 달린 검정 모자도 똑같다. 공통점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일등 객실을 이용해 남프랑스로 휴양 여행을 갈 만큼 여유가 있는 계층으로서 비슷한 생활 습관과 도덕 관념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창문으로 들어온 한낮의 햇빛이 드레스를 은색으로 빛나게 한다. 창밖에는 남프랑스 해안의 풍경이 보인다. 산언덕이 끝나는 곳에 흰 집들, 이어서 새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블라인드에 달린 태슬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열차가 달리고 있음을 말해 주지만, 바깥 풍경은 액자 속에 든 그림처럼 보인다.

마주 앉아 있는 두 여성은 쌍둥이 자매일까? 제목으로 보아 진짜 자매는 아닌 성싶다. 다시 들여다보면 다른 점들이 눈에 띈다. 오른편 여성은 독서 중이다. 책을 든 손에는 푸른색 장갑을 꼈다. 왼편 여성은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오른편 여성 옆에는 분홍 꽃다발이, 왼편 여성 옆에는 과일바구니가 놓여 있다. 

기차는 마차 여행이 지녔던 모험적 성격을 제거하고, 여행을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을 연결하는 것으로 바꿔 놓았다. 기차 승객은 출발역과 도착역을 제외한 중간 지점들을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바깥 풍경이 액자 속 그림 같고, 이 여성들이 방안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가족적이고 쾌적한 공간에서 친밀하게 무릎을 맞대고 있지만 각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바깥을 바라보지도,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시하지도 않는다. 기차와 함께 출연한 새로운 유형의 관계다.

이미혜 미술평론가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212034002#csidx6f7a7be2636cab19f709484832e64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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