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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떠나가는 예술가
  • 작성일2019/12/18 10:17
  • 조회 529
포드 매덕스 브라운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 1852~1855년, 82.5×75㎝, 버밍엄 미술관, 영국 버밍엄
▲ 포드 매덕스 브라운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 1852~1855년, 82.5×75㎝, 버밍엄 미술관, 영국 버밍엄


이 그림은 배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나는 한 가족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부부는 굳은 얼굴로 멀어지는 조국을 외면하고 있다. 원경에 도버 항구의 흰 절벽이 보인다. 두 사람의 옷차림과 무릎 아래 몇 권의 책은 이들이 교육받은 중산층임을 말해 준다. 아내는 품에 안은 아기를 망토로 감싸고 아기의 손을 꼭 쥐고 있다. 남편과 맞잡은 다른 한 손 아래로 뜨개 양말을 신은 작은 발이 삐져나와 있다.

찰스 디킨스는 1850년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펴냈다. 불우한 소년의 인생역전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고, 살아 숨쉬는 조연들은 소설의 감칠맛을 더해 주었다.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던 조연들은 소설 끝부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나 새 삶을 찾는다. 빚에 몰리던 미코버는 지방장관이 되고, 마부 페고티는 농장주가 되며, 영국에서라면 매춘부로 생을 마쳤을 에밀리는 과거를 지우고 존경받는 부인으로 살아간다. 일부 비평가는 디킨스가 이민을 너무 낙관적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했지만 대중은 디킨스에게 열광했다. 

이 소설 때문이었을까. 1852년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은 정점에 이르렀다. 이 해에 약 37만 명이 행운을 찾아 바다를 건넜다. 이 그림에 소재를 제공한 조각가 토머스 울너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울너는 라파엘전파에서 활동했으나 생계를 걱정할 정도였다. 워즈워스 기념비 제작 공모에 기대를 걸었으나 일을 따내지 못했다. 울너는 격분해 점토 모형을 부숴 버리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다.

이 그림에는 울너의 삶과 브라운의 삶이 중첩돼 있다. 울너 부부를 모델로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브라운은 자기 자신과 아내 에마를 대신 그려 넣었다. 이즈음 브라운도 경제적 어려움이 악화돼 인도로 이민갈까 생각 중이었다. 디킨스의 낙관주의와 달리 이 그림은 우울한 분위기다. 노동계급은 이민을 가서도 유사한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많았다. 반면 예술가들에게 이민은 경력 단절이자 사회적 자살을 의미했다. 이 그림에서도 뒤편의 노동계급은 주먹을 휘두르며 떠나게 돼 속시원하다는 표정이다. 울너는 결국 정착에 실패하고 3년 만에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이미혜 미술평론가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218034002#csidx6c1acbcd2ba09678365d51ea013c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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